빈곤 아동을 위한 마음껏 기울이는 장애인 교사

(VOVWORLD) - 화빈 김보이 김쮜 촌락을 찾아 가서  부이 선생님의 집을 물어 보면 누구나   알고 있다.  부이 선생님은 장애를 겪은 사람이지만 10 가난한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쳤다. 그는 어렸을 소아마비를 겪고 게다가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수많은 삶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그는 낙천적인 삶을 살면서 인생의 보람 있는 일에 공헌하고 있다. 그의 모범은 속에서 따뜻한 마음의 좋은 일이 아직 많이 있다는 신념을 불러 일으킨다.
빈곤 아동을 위한 마음껏 기울이는 장애인 교사 - ảnh 1                               빈 선생과 아이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10살 때 고열을 겪은 이후에 소아마비가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16살 때 어머니는 그와 형을 떠나 재혼을 하였다.  이 때는 빈 선생 님은 온갖 세파를 겪은 기간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어려운 형편에 불구하고 그는 학업에 열심히 매달렸다.

어느 날에 글을 잘 모르는 친구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그에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예기치 않게 이 아이가 좋은 학업 성적을 얻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서 자녀들을 맡겼고 그 때부터 그는 사랑의 교실에 몸담고 있다.

주말 아침마다 화 빈 (Hòa Bình) 성 김쮜(Kim Truy)통합학교의 초등 4학년 학생 Minh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빈 선생 의 집으로 향한다. 수업은 8시가 되어야 시작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빈 선생 님을 휠체어에 앉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해 어제 밤 엄마가 남겨둔 식은 밥을 재빨리 먹고는 1킬로미터를 떨어져 있는 선생님 집까지 걸어 가는 것이다. 10분 후에 촌락의 아이들과 형제들의 조그마한 교실인 빈 선생 님 집에 도착한다. 빈 선생 님 교실을 한번 본 사람은 누구나 감동을 받는다. 선생님은 침대 위에서 앉아 있고 주변에 다른 나이의 아이들이 둘레에 앉아 집중하여 강의를 듣는다. 이 아이들은 주로 므엉 (Mường)족의 자녀라서 서로 므엉 언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베트남 표준어가 아직 유창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표준어 강의를 알아 듣기 위해 표준어를 가르친다고 빈 선생 님은 얘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읽을 줄도 줄도 모르다가 이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글도 일고고 쓰고 심지어 어려운 수학 과제마저 있어서 아주 기쁩니다. 특히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표창장이라도 받게 되면 우리 반에 들어오자마자 큰아버지에게 바로 보고합니다. 아이들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빈곤 아동을 위한 마음껏 기울이는 장애인 교사 - ảnh 2빈 선생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통행이 불편하고 게다가 건강 상태가 불안정하지만 그 동안 빈 선생 님의 사랑의 교실은 하루라도 쉬지 않고 심지어 하루에 학생 50명에 이르기 때문에 여러 수업으로 나눠야 되는 경우도 많다. 10년 이상을 걸쳐 빈 선생 님의 사랑의 교실은 부모님에게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촌락 주민들의 형평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아이를 데려와도 그는 환하게 반긴다. 빈 선생 님은 가정 형편이 조금 나은 부모들이 가끔 전기료로 5만 동이나 8만동을 주고 어려운 가정의 부모님들은 고구마, 쌀, 채소를 챙겨주기는 하지만 자신이 절대 요청하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마음을 털어 놓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저에게 좋은 일입니다이런 질병에 걸려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한다면 머리도 둔해지고 쇠약해질 겁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정신적으로 상쾌해 집니다. 소비생활로 얘기하자면 매달 장애인 지원금으로 주어지는 만큼 쓰면 됩니다.

빈 선생 님의 방 안에 학생의 책과 공책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고 빈 선생 님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1개 휠체어와 꽤 새로운 2개의 휠체어가 있다. 자선단체가 준 것이라고 한다. 좋은 소문이 멀리 나자 이를 알게 된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찾아와서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이 선생님을 격려하고 돕고 함께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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