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8월 25일, 하노이 남부사무소에서 남부 봉기 1주년 기념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인민교사(베트남 국가가 수여하는 교육 분야 최고 영예 칭호)인 쩐 흐우 응이엡(Trần Hữu Nghiệp) 의사를 비롯한 수도 하노이(Hà Nội)에 체류 중이던 남부 인사 및 지식인들은 남부 동포를 대표하여 국회와 중앙정부에 사이공시를 호찌민(Hồ Chí Minh, 베트남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시로 개명할 것을 제안하는 역사적인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는 한 개인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쩐 흐우 응이엡 의사와 57명의 남부 지식인 서명 뒤에는 국토가 분단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던 시기, 사이공-자딘(Sài Gòn-Gia Định)과 남부 지역 수백만 주민들의 공통된 염원이 담겨 있었다. 당시 청원서는 “국회와 중앙정부는 사이공시의 명칭을 즉시 호찌민시로 변경하여 남부 주민들의 투쟁과 희생, 그리고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를 상징하게 해달라”고 명시했다.
이 청원서에 대해 호찌민시 역사과학협회 부회장인 하 민 홍(Hà Minh Hồng) 부교수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하노이에 있던 변호사, 언론인, 호앙 꾸옥 비엣(Hoàng Quốc Việt) 선생, 똔 득 탕(Tôn Đức Thắng) 선생 등 이들이 모두 공동 청원서에 서명했습니다. 이 제안은 최초의 제안 중 하나였습니다. 이는 남부를 잘 이해하고 알고 있었으며, 1945년부터 1946년까지 1년간 남부에서 전투에 참여했던 이들의 제안이었습니다.”
1946년의 역사적인 제안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975년 4월 30일, 남부는 완전히 해방되었고, 베트남 국토는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1976년 7월 2일, 제6대 국회는 사이공-자딘시를 호찌민시로 명명하는 결의안을 공식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는 지리적, 정치적, 정신적으로 국가의 완전한 통일을 기념하는 성스러운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러한 열망은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하 민 홍 부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1976년 7월 2일, 국회는 국가 통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완수하기 위한 여러 결정, 즉 국명, 국가, 국기 등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하루를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들 중 국회는 사이공-자딘시를 호찌민시로 ‘개명’이 아닌 ‘명명’하는 것에 대해 추가로 논의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제1대 국회부터 제6대 국회까지 수십 년 동안 지도자의 이름을 딴 지방의 명칭을 결정한 사례는 당시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호찌민 주석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지 반세기 동안, 호찌민시는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끊임없이 확고히 해왔다. 새로운 발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호찌민시는 국가 경제의 견인차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베트남의 강력한 도약 열망을 상징하는 선구적인 사명을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