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이지만, 결코 유산 보존과 활용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베트남 북부 인기 해안 관광지 꽝닌(Quảng Ninh)성에서는 하롱(Hạ Long)베이의 해양 절경과 옌뜨(Yên Tử) 영산(靈山)을 잇는 여정이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유산의 층위를 지속 가능한 내생적 동력으로 전환해, 유산이 시대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이른 봄의 어느 날, 꽝닌성 홍가이(Hồng Gai)동 레타인똥(Lê Thánh Tông) 거리의 작은 방에서 원로 사진작가 도 카(Đỗ Kha) 선생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빛바랜 필름들을 조심스레 넘겨보고 있었다. 1994년 가을, 그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서에서 핵심 자료가 된 160장의 필름으로 하롱베이의 ‘초상화’를 그려낸 주인공이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그해 홀로 떠났던 특별한 여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꽝닌성 지방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소박한 카메라 한 대와 필름 몇 통이 전부였던 그는 먼 거리의 아름다운 장면을 담기 위해 사비로 망원렌즈를 구입할 만큼 열정으로 가득했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이 예술가는 셔터 한 번을 누를 때마다 심혈을 기울였다. 노출계조차 없었기에 모든 촬영 조건을 오랜 경험과 예리한 직관으로 결정했다.

여정을 마친 직후 그는 옛 꽝닌성 문화정보청 관계자들과 함께 서둘러 수도 하노이(Hà Nội)로 향했다. 비좁은 여관방에서 이들은 밤을 새워 필름을 비춰보고, 프레임 하나하나를 잘라 환등기에 비춰보며 가장 뛰어난 160컷을 엄선했다.

그의 렌즈에 담긴 하롱의 아름다움은 단지 바위와 물의 정적(靜寂)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노을 속에서 물결 위를 일렁이는 어촌 마을은 이 자연의 경이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문화적 한 조각이었다.

사진 제공: 도 카 작가, VOV5

도 카 사진작가가 풍부한 감성을 담은 사진들로 하롱을 정의하는 데 기여했다면, 그 성과는 응우옌 반 뚜언(Nguyễn Văn Tuấn) 전 꽝닌성 당 선전부 부부장과 같은 혜안을 지닌 관리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유산 등재 신청서 작성을 총괄했던 그는 근본적인 전략적 사고를 통해 유산의 윤곽을 구체화했다.

유산을 끊임없이 발전하는 유기체로 바라본 그와 동료들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계획을 수립했으며, 관광 명소를 정비하고 방대한 학술 자료를 완성하는 데 주춧돌을 놓았다. 그 결과 하롱베이는 2000년 지질·지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자연유산으로 두 번째 등재됐다.

사진 제공: 꽝닌성 신문, 도 카 사진작가

선각자들의 비전은 일찍이 한 지점에서 맞닿아 있었다. 하롱베이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반경 50km 이내에는 옌뜨, 박당(Bạch Đằng), 번돈(Vân Đồn)처럼 역사와 문화가 짙게 배어 있는 공간들이 자리해 있다. 하롱을 옌뜨, 박당과 하나로 꿰어내는 일이야말로 지역을 아우르는 하나의 유산 공간을 열어젖히는 열쇠이다. 그러나 이 구상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보전이라는 과제는 낡은 행정적 틀을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관리 사고를 요구한다.

*이 인포그래픽 만든 과정에서 AI가 활용되었다.

탁 트인 바다를 뒤로하고, 유산의 물줄기는 영산 옌뜨로 향한다. 이곳은 무미건조한 좌표의 숫자로 재는 것이 아니라, 구름 낀 산자락 사이 피어오르는 침향(沈香) 연기만큼이나 두터운 기억과 깊은 영성으로 채워진 곳이다.

700여 년 전, 쩐(Trần, 陳) 인종(仁宗) 불황(佛皇)은 백성과 함께 온전하게 국토를 수호한 뒤 왕좌를 내려놓고 산에 올라 수행에 정진하며, 순수 베트남 선불교인 쭉럼(Trúc Lâm·죽림) 선종을 창시했다. 그가 후대에 남긴 것은 다름 아닌 삼화(三和) 즉 화해·화합·화평 사상으로, 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시대적 의미를 잃지 않고 있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과 불자들이 평안과 깨달음을 찾아 이곳을 순례한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옌뜨‧빈응히엠(Vĩnh Nghiêm)‧꼰선(Côn Sơn)-끼엡박(Kiếp Bạc) 유산 단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첫해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깊은 균열 앞에서 옌뜨 영봉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화해의 메시지는 베트남이 세계에 전하는 숭고한 인문적 가치이다. 이제 그 영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아득하게 펼쳐진 대나무 숲 너머로 하롱베이의 바다가 펼쳐진다. 산과 바다, 도(道)와 ​삶은 마치 자연이 정교하게 세운 하나의 성곽처럼 유일무이한 문화 공간을 감싸고 길러내고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라는 타이틀은 문화 유산 보존 여정을 마무리 짓는 훈장이 아니다. 천 년을 이어온 '삼화'의 가치가 역사책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를 길러내는 내생적 자원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과감한 전환에 있다. 그 문화적 퇴적을 이 시대의 물줄기 속에 녹여 넣는 것이다.

지난날 하롱 바다의 물결 위에서 흔들리던 필름 속 장면들로부터, 오늘날 옌뜨라는 이름이 세계 지도 위에 올리는 여정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공통분모가 뚜렷이 드러났다. 유산을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그것을 과거 속에 '가두어' 두는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전략적 과제에 대한 해답으로, 꽝닌성은 꽝닌성 당 위원회의 제17호 결의를 통해 문화와 인간을 발전의 중심에 두는 일을 스스로 앞장서 실천했고, 이러한 사고는 이후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힘을 보태는'(제13기 당 정치국의 제80호 결의) 뒷받침을 받았다. 이 저변에 흐르는 하나의 맥이야말로 커다란 전환 즉 '정적인 보전'을 넘어 '역동적인 창조 생태계'를 빚어내는 전환을 밀어 올리는 지렛대였다.

*본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과정에서 AI가 활용되었다.

유산을 중심에 놓다: 지방의 비전과 국제 사회의 환영

국가적 원동력과 '열린 유산'의 흐름

베트남 당 정치국이 제80호 결의를 공포하면서, 꽝닌성의 주도적인 행보는 한층 더 든든한 전략적 발판을 얻게 되며 문화산업·관광·디지털화를 통해 유산을 하나의 자산으로 공식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발판'을 두고 응우옌 비엣 중 청장은 제80호 결의야말로 제17호 결의의 격을 한층 높여주는 전략적 회랑이라며, 꽝닌성이 세계 문화·관광 가치 사슬에 당당히 발을 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의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현재 유네스코가 전 세계적으로 촉진하고 있는 사업들과 꾀를 같이 한다. 조나단 월리스 베이커 유네스코 베트남 대표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그러나 문화 산업은 인프라와 기술, 그리고 대규모 투자가 좌우하는 각축장이다. 발전을 위해 개방을 추진하면서도 어떻게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에 유네스코는 이러한 산업적 도약이 유산이 지닌 세계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원칙적인 경계선 설정하고 있다.

너무도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세계 속에서, 옌뜨의 영봉에서 하롱베이의 바다로 이어지는 유산의 회랑은 인간이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에서 시간은 초 단위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숨결의 리듬으로 헤아려진다.

‘세계유산’이라는 칭호는 자랑스러운 이정표이다. 그러나 경이로운 유산을 진정한 ‘살아 숨 쉬는 유산’으로 가꾸어 가는 여정은 여러 세대에 걸쳐 꾸준히 이어가야 할 사명이다.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사고와 국제적 안목을 바탕으로 과거의 열망은 오늘날 꽝닌에서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렇게 베트남 민족 문화의 맥은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글: Hong Van, Le Phuong, Anh Huyen
사진 및 영상: Chi Phuong, Duc Anh, The Hung
번역: Hong Ngoc
디자인: Hong Ng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