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VWORLD) - 닌빈 (Ninh Bình)성 낌선 (Kim Sơn) 왕골 수공예 마을은 옛날부터 왕골 재배 및 왕골 수공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왕골은 약 200년 전부터 낌선 (Kim Sơn) 지방에서 재배되었으며, 약 100년에 걸친 간척사업과정에 이곳 사람들은 해변 사주에 드넓은 왕골 밭을 만들었다. 전통 왕골 수공예품의 요람에서 태어난낌선 (Kim Sơn) 출신 수공 예능인들은 뛰어난 솜씨로 다양한 수공예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국내외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낌선 (Kim Sơn)이라는 이름은 옛날 탁월한 경영가였던 응우옌 공 쯔 (Nguyễn Công Trứ, 1778 – 1858) 대신이 지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이 해안 지역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해안 경제, 농업 특히 왕골 재배를 발전시켰다. 조상의 전통을 계승하여 1954년부터 여기 주민들은 바다 쪽으로 땅을 넓혀 경작지를 만들었다. 6번에 걸쳐 제방을 확대하면서 경작지의 총 면적은 약 4,000헥타르에 이르고 왕골 재배 면적은 200헥타르에 달했다. 그런 과정에는 낌쭝(Kim Trung), 낌띠엔(Kim Tiến), 낌하이(Kim Hải) 등과 같은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낌선 (Kim Sơn) 왕골 돗자리는 낌선 (Kim Sơn)현 백년 전통이 담긴 왕골로 만들어진다. 질이 좋은 이 친환경 제품은 국내외 시장에서 매우 유명하다. 수백 년 동안 수공예 요람에서 생활해 온 낌선 (Kim Sơn) 사람들은 진정한 수공 예능인의 소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바로 뛰어난 손재주, 융통성, 기민성, 공예에 대한 천착성이다. 이러한 자질로 여기 예능인들은 까다로운 기술적 요구에 부응하고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닌빈 (Ninh Bình)성 낌선 (Kim Sơn)현 왕골 가공품 및 수공예품을 만들어 냈다. 낌선 (Kim Sơn)현 원로 도안란 (Đoàn Lan) 씨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도 낌선 (Kim Sơn) 주민들은 언제나 고유 직업을 사랑하고 노동하는 데에 창의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 모델이라도 우리는 바로 만들 수가 있고 오늘날의 시장에 금방 적응할 수 있습니다.
왕골은 간척 사업과 더불어 선도적인 공예작물이 되고 높은 경제 효율성을 가져다 주었다. 낌선 (Kim Sơn)의 부드러우면서도 반짝이는 왕골은 바다와 육지를 연결시는 한편, 드넓고 풍요로운 자연과 근면하고 강인한 사람들을 연결시켰다. 또한 왕골은 낌선 (Kim Sơn) 지방과 전국 각각 지방 및 해외 시장을 연결시켜 경제–문화–관광업을 개발하는 데에 크나큰 일익을 기여해 왔다. 도안란 (Đoàn Lan)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 공예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본인이 이 땅에서 태어난 만큼 이 공예를 더욱더 중요시하고 사랑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고향을 건설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면 사람들과 함께 이 전통 공예를 잘 간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왕골은 성장 주기가 있기 때문에 벼처럼 조심스럽게 돌봐야 한다. 왕골 재배자들은 땅을 잘 갈고 잡초를 뽑아내고 비료를 줘야 한다. 왕골의 수확기는 매년 음력 5월과 10월이다. 왕골의 질은 담수와 염수의 비율로에 따라 달라진다. 낌선 (Kim Sơn)현의 왕골 가공 제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왕골 돗자리다. 아름다운 돗자리를 만들려면 사람들이 왕골 한 줄 한 줄을 꼼꼼히 선택하여 자르고 나서 햇빛 아래 충분히 널어 말려야 한다. 그래야 왕골이 튼튼해지고 염색을 해도 오랫동안 색깔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돗자리의 꽃무늬 직조 단계가 가장 특별하다. 직조자는 눈이 빨라야 하고, 부드럽고 정확하게 직조해야 실수가 생기지 않는다. 낌선 (Kim Sơn)현 주민 응우엔 반 찐 (Nguyễn Văn Chinh) 씨는 다음과 같이 나눴다.
왕골을 심어 수확한 이후 우리는 직조를 위해 하얀 왕골 줄기를 가공합니다. 이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가족들이 길가에서 왕골을 널어 놓고 식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비가 와서 왕골을 다시 집으로 옮기기 위해 식사를 포기해야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비에 맞으면 좋은 왕골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햇빛이 나면 밖으로 뛰어가고 비가 내리면 안으로 뛰어와야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습니다. 왕골 가공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낌선 (Kim Sơn)현 모든 면과 마을이 왕골 가공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 중에 20군데의 왕골 가공 마을이 전통공예마을로 공인을 받았으며, 5,000개 이상의 기업과 가정이 왕골 재배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낌선 (Kim Sơn)현 왕골 돗자리 제품은 전세계 20개국 시장에 진출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