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리에우 성, 떤가 따이뜨 예술의 요람

(VOVWORLD) - 떤가 따이뜨는 남부의 특색이 있는 예술 형식이며 겨우 백여  전에 탄생했는데도 불구하고 파급력이 매우 크다남부 21개의 성에서는 다른 민족들과의 문화 교류를 통하여 떤가 따이뜨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으며  민족 간의 존중과 화합을 나타낸다그러므로 2013년에 베트남 남부의 떤가 따이뜨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선정되었다떤가 따이뜨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리에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박 리에우성은 많은 선배 예술인을 배출했기 때문에 떤가 따이뜨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박 리에우성은 떠가 따이뜨를 위한 많은 불후 악곡, 가곡들을 탄생시켰고 20세기 초반부터 강력한 창착 운동을 일으켰다. 기록 자료에 따르면 20세기 초반에 남부에서 떤가 따이뜨 형식으로 활동한 음악 그룹이 많이 형성되어 신속히 남부 6개의 성으로 퍼졌다. 박 리에우 성에 Le Tai Khi (1870 - 1948) (당시 베트남의 유명한 전통고전극 감독인 Le Van An의 아들)음악 교수가 있는데 흔히 냑키 (Nhạc Khị)라고 불린다. 냑키 (Nhạc Khị)는 제례음악 그룹을 설립하여 마을 공동 제사나 가정의 제사가 있을 때 공연하며 이 그룹은 박 리에우에서 최초 제례 음악 그룹이었다. 냑키 (Nhạc Khị)도 최초 20부의 악보를 교정하고 갱신하는 데에 기여하는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기 때문에 고전 음악 예술가로부터 선조라고 칭송을 받는다.

박 리에우 성, 떤가 따이뜨 예술의 요람 - ảnh 1박 리에우에 있는 관광지에서  떤가 따이뜨 예술가가가 연주하고 있습니다. (사진: 국경수비대 신문사) 

20세기 30년대에 박 리에우에서 떤가 따이뜨 활동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했고 남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떤가 따이뜨 예술가가 날이 갈 수록 더 많아졌고,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전문 예술가가 되었으며 싸우 러우(Sáu Lầu), 까이 데 (Cai Đệ), 므어이 커이 (Mười Khói), 바 쫏 (Ba Chột), 뜨 빈 (Tư Bình), 하이 따이 (Hai Tài), 찐 티엔 뜨 (Trịnh Thiên Tư), 몽 번 (Mộng Vân), 남 녀(Năm Nhỏ), 리 키 (Lý Khi), 뜨 쿠언 (Tư Quận) 등처럼 대부분은 냑키 (Nhạc Khị)에게 교육을 받았다. 또는 Lư Hòa Nghĩa, Sanh Xía, Chín Quy, Thiện Ý, Thiện Ngộ등과 같이 Sư Nguyệt Chiếu (박 리에우 성에서 제례음악과 떤가 따이뜨를 전파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또 다른 선배 예술가)에게 훈련을 받은 사람도 있다. Nhạc Khị의 우수한 제자 중에 Cao Văn Lầu가 있다. 스승을 계승하여 Cao Văn Lầu는 동문 친구들과 같이 박 리에우 떤가 따이뜨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이 떤가 따이뜨 위원회는 한때 박 리에우 성 내에만 떤가 따이뜨 운동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명성이 전체 남부로 퍼졌다.  

박 리에우 성, 떤가 따이뜨 예술의 요람 - ảnh 2박 리에우에 있는 관광지에서  떤가 따이뜨 예술가가가 연주하고 있습니다. (사진: 국경수비대 신문사) 

이 기간에 박 리에우에서 주로 떤가 따이 뜨 음악의 최초 20곡을 널리 사용하였다. 그 외에 박 리에우 예술가들은 원본 곡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사를 짓게 된 수백 곡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였다. 박 리에우 시에 있는 도 응억 언 (Đỗ Ngọc Ẩn)예술가가 다음과 같이 나눴다.

현재 저는 개인적으로 떤가 따이뜨의 몇몇 음계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는 것을 말하면 최초 20곡에 모두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개별 음계를 말하면 음계인데 세네 가사를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100곡에 달하였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고향, 나라, 사람 소개, 특히 신농촌 건설 운동, 행복한 가정 건설 운동 등처럼 지방의 운동들을 특히 좋아하고 요컨대 문화, 사회 주제를 좋아합니다.

문화체육관광청의 통계에 따르면 박 리에우성에서 현재 약 70개의 떤가 따이뜨 동아리, 팀, 그룹과 500명 이상의 떤가 따이뜨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다. 이 숫자를 통해 이곳 사람들의 떤가 따이뜨 운동의 강한 활력과 끊임없는 전승-계승 경로를 증명한다. 박 리에우 시 Do Ngoc An 예술가가 알려줬다.

자신이 남부 사람이며 떤가 따이뜨 운동은 20세기부터 번창하였습니다. 저희 가정에서 아버님과 형님도 음악 장르를 매우 좋아하셔서 아버님, 형님과 친구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게 되었고 떤가 따이뜨를 추구했습니다. 떤가 따이뜨가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장했을 30 이상 떤가 따이뜨에 애착을 가져온 저뿐만 아니라 떤가 따이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랑스러워합니다.

필수적인 마음의 양식으로 여겨져 있으므로 시골에서 예전부터 찬지에 떤가 따이뜨가 없으면 안 되었다. 조금이라도 떤가를 아는 사람들은 마음껏 부를 수 있게끔 서로 모여서 밴드를 만든다. 자기가 아는 악기를 치고 박자를 잘못 맞추면 다시 맞추고 노래를 잘 부르고 악기를 잘 칠 때까지 서로 격려하고 연습한다. 그 결과, 잔치에서 공연하는 밴드를 모인 것으로부터 점차 떤가 따이뜨 그룹, 팀이 형성되어 나중에 떤가 따이뜨 동아리가 설립되었다.

‘온 국민이 단결하여 문화 생활 건설하기’라는 운동과 더불어 마을, 촌마다 문화적 수준이 인정되며 떤가 따이뜨 동아리들이 회원을 선정하여 마을급 동아리, 현급 동아리를 설립하게 된다. 떤가 따이뜨 동아리들은 풀뿌리 운동을 발전하는 데에 핵심 요소이다.  박 리에우 성 8동에서 떤가 따이뜨 Tu Duy Toan 예술가가 다음과 같이 나눴다.

현재 지방에서 , 마을, , 시부터 성까지 어디서나 떤가 따이뜨 동아리가 설립되어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을급 동아리와 같은 경우 매번 모임에 새로운 가사를 지어야 하고 공연할 창작해야 합니다. 리에우성의 떤가 따이뜨 운동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원 수가 증가하고 운동이 널리 펴지고 있습니다.

 박 리에우 떤가 따이뜨는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발전을 통해 특색이 만들어졌고 일반 떤가 따이뜨 예술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겼다. 이것은 역시 자신 성의 전통 문화 본래의 색을 지키면서 발휘하는 데에 박 리에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을 나타낸다. 동시에 이러한 특징들이 남부 지방의 고전 음악과 까이 르엉에 색조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다. 이 특징들은 박 리에우 성 전세대 예술가들의 대단한 정신적 노동 성과이며 오늘날과 미래의 박 리에우 사람의 자랑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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