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VWORLD) - 인구가 아주 적은 소수민족이지만 쯧(Chứt)족은 자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여러 독특한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쯧족의 본래 고향은 꽝빈(Quảng Bình)성 보짜익(Bố Trạch)현과 꽝짜익(Quảng Trạch)현 사이였다.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일부 베트남 가문의 족보에 따르면 이곳 산악지대에서 룩(Rục) 부족과 사익(Sách) 부족 사람들이 적어도 500 년 이상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꽝빈성에 있는 쯧족의 마을[사진: dantocmiennui.vn] |
쯧족은 다섯 개의 종족 집단으로 나누어진다. 사익(Sách), 마이(Mày), 룩(Rục), 아램(A Rem), 말리엥(Mã Liềng)이다. 그들의 고유 언어는 비엣-므엉(Việt – Mường)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베트남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16개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쯧족은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쯧족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해 온 낌 응옥(Kim Ngọc) 박사에 따르면 1905년~1911년 사이 프랑스 선교사들이 자인(Gianh)강 상류 지역과 산악지대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선교사들은 그들을 딱꾸이(Tắc Cũi), 짜꾸이(Chà Cũi) 또는 우모(U Mô)라고 불렀다. 1959년 베트남 국경 수비대는 나무 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생계을 유지하며 주로 산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의 초기 연구를 보면 룩 부족과 아램 부족의 옛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무변잡록』 (撫邊雜錄)이나 『오주근록』(烏州近錄)이라는 옛 문헌에서도 사익 부족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익 부족이 쯧족에 속한 소수민족 집단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정착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익이라는 이름은 마을 이름이라고 해석됩니다. 옛날 사람들이 좁은 골짜기이나 평야지대에 함께 모여 살면서 자신의 마을을 사익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익 부족 사람들은 자민족 이름을 훙(Hung)이라고 부릅니다. 프랑스인들이 숲에서 만난 소수민족 집단과1959년경 국경 경비대나 국경 순찰대가 다시 발견한 집단은 아마 룩, 말리엥 또는 아램 부족 사람으로 사료되지만, 그들이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비엣족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들도 자신이 베트남 사람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1973년 말 사익, 마이, 룩, 아램과 말리엥 부족 사람들은 전문가들로부터 쯧족으로 명명되기 시작했다. “쯧”이란 “높은 산”을 의미했고, 쯧족은 산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석된다. 사익 부족 사람들은 비교적 평평한 계곡에서 거주하며, 옥수수를 비롯한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마이 부족 사람들은 말리엥, 사익, 응우온(Nguồn), 낑(Kinh)족과 서쪽에 있는 라오스족과 문화 교류가 활발하다. “마이”라는 이름은 “물가 건너편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전에 룩 부족 사람들은 주로 깊은 숲속에서 살았다. 그들이 거주하는 동굴 주변의 먹을거리에 따라 이주 기간이 달라질 수 있는데 주로 5일이나 14일 내에 한번씩 이주해야 했다. 반면에 말리엥 부족과 아램 부족은 언덕과 높은 절벽이 있는 산기슭에서 살았다.
지금 그들은 마을에 정착했습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지방 정부가 그들을 위해 좁은 골짜기 땅을 만들어 주고 거기에서 그들이 함께 밭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램 지역 또는 퐁냐 – 깨방(Phong Nha - Kẻ Bàng) 국립공원 중심지역과 같은 지역에서 살면 그곳에서 약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밭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산기슭이나 좁은 골짜기 사이에 비교적 대지가 낮은 땅이 있습니다. 라오째(Rào Tre)에 사는 말리엥 부족들처럼 논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룩란(Rục Làn)이나 마마까땁(Mà Ma Cà Tắp)에 사는 룩 부족과 사익 부족은 좁고 긴 골짜기에서 물을 운반하고 논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자급자족으로 밭농사를 짓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쯧족은 베트남에서 인구가 아주 적은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사진: bvhttdl.gov.vn] |
쯧족과 쯧족 고유어를 발견한 전문가들은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냈다.
쯧족 언어에는 여전히 다양한 음운과 이중음절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초기 베트남어, 즉 베트남어가 므엉어로 분리되기 전에 쓰이던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일부 선사시대 집단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한족(漢族)과 백월(百越)족 사람들과 교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고대 베트남 문화가 한족 문화와 교류를 이루며 그들이 베트남인이 되었고 그 언어가 바로 베트남어였습니다. 북중부 지역에서 머물며 타이족 문화와 교류한 집단은 므엉족이 되었습니다. 다른 일부는 숲에 들어가 라오스 몇몇 민족과 교류하면서 따이펑(Tày Poọng)족이나 카펑(Khà Poọng)족 즉 오늘날의 쯧족이 되었습니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쯧족의 전통 가옥은 종종 언덕, 흙산 또는 협곡의 끝자락에 만들어진다. 아램 부족, 말리엥 부족과 마이 부족은 냐산이라는 마루집에서 사는 데 반해 사익 부족 사람들이 진흙집에서 거주한다. 그들이 1칸, 2칸 또는 3칸 짜리 집을 짓고 양쪽에 문을 만든다. 집을 짓기 전에 사익 부족 사람들은 집주인의 태어난 해에 따라 행운이 있는 방향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
쯧족의 집은 보통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주방과 침실입니다. 특히 사익 부족 사람들은 이제 국가 정착사업에 따라 이미 지어진 집이나 단독주택, 진흙 집에만 살고 있으며, 마이 부족, 아램 부족 사람만이 냐산이라는 전통 가옥에서 산다. 특히 말리엥 사람들은 집 구역을 나누는 것에 대해 굉장히 신중합니다. 예전에 그들은 오두막 집에서 살았는데, 보통 부엌은 여기 있고, 여자들은 이 방에만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신성한 지역은 남자들만 살 수 있었습니다. 유령 기둥이라고 하는 이 기둥은 항상 집의 가장 안쪽 구석에 배치됩니다. 유령 기둥 옆에는 귀신이 돌아가기 위한 작은 창문이 있습니다. 유령 기둥에는 보통 나무판으로 만든 제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령의 기둥에 칼을 치고, 나무판을 그 안에 깊이 꽂습니다. 병으로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는 제단이지만 따로 분향을 하지는 않습니다.
룩 부족은 마지막까지 동굴 생활을 했던 민족이다. 1957년 이후부터 국가 정착사업의 전개와 함께 동굴에 사는 인구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들은 간단한 구조의 오두막 집이나 이후 진흙집으로 이사를 했으며, 12가구부터 20가구까지 함께 모여 살며 옌헙(Yên Hợp) 마을과 모오(Mò O) 마을을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