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1972년 폭탄을 견디며 정의의 소리를 세계로

(VOVWORLD) - 1972년 12월 베트남 군과 인민들은 하노이 수도와 북부 지방에서 폭탄을 투하하던 미군의 전략적 공중전에 반격하는 동안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은 방송의 임무를 끝까지 유지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의 소리, 정의의 목소리와 평화에 대한 열망을 베트남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전달하였다. 1972년 하노이 - 디엔비엔푸 공중전 승리 50주년을 맞아 그 당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간부들과 기술자, 아나운서 그리고 예술인들의 노력과 결심을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1972년 말 미국은 하노이, 하이퐁 그리고 베트남 북부 일부 지역에 대한 전략적 공중전을 결정했다. 1972년 12월 18일부터 29일까지 열린 라인베커 작전 (Linebacker II Station)에서 미군 전략 폭격기 B-52는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의 산하 기관인 메찌(Mễ Trì) 방송국을 비롯한 하노이에서의 많은 곳을 파괴했다. 미군의 목표는 분명했다. 그것은 하노이와 베트남 북부 지방의 주요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베트남의 소리인 라디오 전파를 끊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군의 음모는 완전히 실패했다. 전민, 전군의 결심과 함께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은 쏟아지는 폭탄을 이겨내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라디오 방송 업무를 유지하며 베트남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세계에 전파할 수있었다. 1971년부터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대외방송에서 근무했던 수산토 (Susanto) 인도네시아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나눴다.

1972년 12월 16일 방송국은 저희 가족을 포함해 직원들을 꾸옥와이(Quốc Oai) 피난처로 보냈습니다. 12월 18일 미군은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인도네시아어 방송실에서  기사번역 및 방송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번역 후에 하노이에 보내고 방송을 했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어 방송실은 2팀으로 나누어져 그중 2명은 하노이에서 방송 업무를 담당하고 나머지는 피난처로 가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날 하노이 상공에는 조종기가 많이 날아다녔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하노이의 하늘은 불꽃처럼 밝았습니다.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일해야 했지만 방송국 간부진 모두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메찌 방송국이 폭탄을 맞았음에도 대외방송의 직원들은 여전히정상으로 근무했습니다.”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1972년 폭탄을 견디며 정의의 소리를 세계로 - ảnh 1전쟁 시기에 메찌 방송국의 안테나 시스템 [사진: VOV 자료]

두려움을 이겨내며 적의 폭탄 앞에서도 물러서지도 않고 모든 상황에서 베트남의 소리를 유지해야 했다. 그것은 베트남의 소리 방송국 간부진들의 숭고하고 역사적인 사명이었다. 당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의 아나운서이자 기자였던끼에우 와인(Kiều Oanh) 씨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저는 1964년에 방송국에 입사했습니다. B-52가 하노이를 폭격하던 날 저는 뚜옛 마이(Tuyết Mai) 아나운서와 함께뉴스 낭독을 진행했습니다. 점심이든 밤이든 사이렌이 울리면 저희는 엄폐호에서부터 계속 자전거를 타고 방송국에 가서프로그램을 녹음했습니다."

당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기술실에서 근무하던 당 쭝 히에우(Đặng Trung Hiếu)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방송국 시스템은 안전을 위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적군의 B-52 폭격기가 하노이에서 폭탄을 투하했을 때 메찌 방송국이 폭탄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시민들은 다음날 297m의 전파 방송을 정상적으로 들을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은 산하 방송국이 파괴되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송이 중단되지 않도록대안을 잘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히에우 씨가  언급한  297m (주파수 1010 KHz)는 1972년 12월 19일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이 보내는 5개 주파수 중 하나였다.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그날 새벽 5시 5분부터 9분 동안 방송 전파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는데 대안을 잘 준비했기 때문에 297m 전파 프로그램이 중단된 9분 후에 정상적으로 다시 전파되었으며 베트남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전달되었다. 

베트남 민주공화국 하노이 수도에서 방송하는 베트남의 소리입니다.

2012년 하노이 - 디엔비엔푸 공중전 승리 4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 당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의 기념비적인 9분간에 대해 편집서기실 실장이었던 빈 짜(Vĩnh Trà) 기자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9분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편집진은남부지방 전쟁터에있는국민들에게그리고전세계각지 베트남 교포들과세계인들에게 전신을받았다특히 일본청취자들이파괴된방송국을재건하기위해  5백만엔을기부했다..”

회고록에서 당시 베트남 남부 해방군 부총사령관인 응우옌 티 딘(Nguyễn Thị Định) 여장군은 다음과 같이 썼다. 

“12 19일 아침에 저는라디오방송을들었을갑자기방송이중단되어서 가슴이터진 듯이 불안했다하노이를 매우 걱정했다적군이 방송국을 폭겼했다지금 하노이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아군이 하노이 수도를 보호할 있을 까 걱정된다그러나  9 후 베트남의 소리는 웅장하고 과감하게 전해져서 참으로 기뻤다”.

그날의 추억은 어제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빈 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50여 년을 돌아보니 전쟁 대비를 위해 정부, 국방부와 함께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지도부의 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편집장인 쩐 럼(Trần Lâm) 기자는 전쟁 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을 위한 대비책을 마련했습니다. 그 대책은 세 가지로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모든 상황에서 방송이 중단되지 않도록 방송 기관을 여러 부분에 배치하고 서로 협조하는 것입니다. 다음 모든 문제를 대응하는 인적 자원을 준비합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인민과 군대의 생활과 투쟁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는 정보를 전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내용과 방송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가장 빠르고 멀리 베트남의 소리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프랑스군 항전 시기부터 호찌민 주석은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해 베트남의 소리를 항상 울려 퍼지게 했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은 모든 상황에서 당과 국가 및 국민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1972년 12월 역사적인 날들에서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 방송국 전파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1972년 미군의 전략적인 공중전폭격을 성공적으로 반격하고 1973년 1월 27일 종전 및 베트남 평화 재건에 관한  파리 협정을 체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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