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7호 건물과 지하벙커, 베트남 통일을 위한 특별 총사령부

(VOVWORLD)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탕롱(Thăng Long) 황성 중심 지역에는 궁궐과 누각의 흔적 외에도 주목할 만한 유적이 하나 있다. 바로 D67호 건물 및 지하벙커 유적지다. 이곳은 남부 해방 임무를 총괄하고 지도하였던 베트남 노동당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의 핵심 본부 즉 총사령부의 중심지로 알려져있다.
 D67호 건물 및 지하벙커는 베트남 노동당의 주요 방침과 전략이 전국은 물론 인도차이나 전역의 전장에 전달되던 장소였다. 1968년 설날 대공세, 1968년 9번 국도–캐사인(Khe Sanh) 작전, 1971년 9번 국도–남라오스 작전, 1972년 12일 낮밤 동안 벌어진 북부 지역에 대한 미군의 폭격에 대응한 작전, 해상 및 도서 지역 해방 작전 등과 같은 중요한 작전이 이곳에서 계획되었다.
D67호 건물과 지하벙커, 베트남 통일을 위한 특별 총사령부 - ảnh 1D67호 건물 및 지하벙커는 베트남 노동당의 주요 방침과 전략이 전국은 물론 인도차이나 전역의 전장에 전달되던 장소였다. (사진: 폭 타이/vovgiaothong.vn)
당시 베트남 노동당 중앙집행위원회 레 주언(Lê Duẩn) 제1서기, 팜 반 동(Phạm Văn Đồng), 쯔엉 찐(Trường Chinh) 국회의원 등 주요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 총사령부를 직접 방문하여 전장의 전황을 면밀히 점검하였으며 총사령관인 보 응우옌 잡(Võ Nguyên Giáp) 대장은 자주 이곳에 머무르며 작전 회의를 주재하였다. 베트남 군사역사연구원 전 부원장인 응우옌 마인 하(Nguyễn Mạnh Hà) 대령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67 미군의 북부 파괴전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자 중앙군사위원회와 총사령부는 미군의 폭격에도 견딜 있는 안전한 건물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인근의 기존 사무공간에서 곧바로 대피 가능한 형태로 D67 건물이 건립되었습니다. 해당 건물은 폭탄이 투하되더라도 두꺼운 벽체와 견고한 출입문, 방음, 방사능 화학물질 차단 기능 등을 갖추어 고도의 보안과 안전성을 확보하였으며, 주요 회의 전용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실용적이며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었고, 1967년에 준공되어 'D67 건물'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습니다.”

D67호 건물과 지하벙커, 베트남 통일을 위한 특별 총사령부 - ảnh 2베트남 군사역사연구원 전 부원장인 응우옌 마인 하(Nguyễn Mạnh Hà) 대령 (사진: VOV)
D67호 건물은 평지붕의 단층 건물로 D67호 지하벙커와 함께 특별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 건물은 당시 건축부(현 건설부) 산하 건축설계연구소에서 설계한 것이다. 건물은 총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의 넓은 공간은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의 회의실로 사용되었다. 동쪽 작은 방은 보 응우옌 잡 대장의 집무실, 서쪽 작은 방은 반 띠엔 중(Văn Tiến Dũng) 대장의 집무실로 활용되었다.

D67호 건물과 동시에 건설된 D67호 지하벙커는 건물과 불가분의 핵심 공간으로 긴급 상황에서 예비 지휘본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벙커는 3단의 계단을 통해 하강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건물과 연결된 두 개의 통로를 통해 이동이 가능하였다. 전시 상황을 고려하여 환기 시스템과 조명 설비 또한 특수하게 설계되어 있어 가혹한 전쟁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D67호 건물과 지하벙커, 베트남 통일을 위한 특별 총사령부 - ảnh 3D67호 건물은 굴복하지 않는 항전의 정신, 어떠한 역경에도 적응해 온 민족의 저력, 자주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사진: 폭 타이/vovgiaothong.vn)
1974년 12월 18일부터 1975년 1월 8일까지 정치국은 이 D67호 벙커에서 회의를 열고 1975년부터 1976년까지 2년 안에 남부를 해방하기로 결의하였다. 이곳은 1975년 봄 대공세의 전 과정을 지휘하고 조정한 장소였으며, 그 정점은 역사적인 호찌민 작전이었다. 응우옌 마인 하 대령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75 대공세가 개시되자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의 회의들이 연이어 이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마침내 D67 건물은 1975 4 30 남부 해방 승전 소식을 맞이한 역사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D67호 건물은 단순한 역사적 유적지를 넘어, 굴복하지 않는 항전의 정신, 어떠한 역경에도 적응해 온 민족의 저력, 자주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현재 건물과 벙커의 내부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들로 전시되어 있다. 회의실에는 당시 사용되던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회의 참가자의 이름과 직책이 적힌 명패, 작전 지도, 지휘 통신 장비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하노이 탕롱유산보존센터 응우옌 타인 꽝(Nguyễn Thanh Quang)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상, 의자, 전화기 모든 유물과 건축 구조물들이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시기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게 해줍니다. 이러한 혁명 유적은 지금도살아 있으며’, 역사적 이야기를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선대들이 어떻게 힘을 다해 싸웠고 오늘날의 독립을 이루었는지를 이해하는 있어 매우 소중한 자료입니다.”

D67호 건물과 지하벙커, 베트남 통일을 위한 특별 총사령부 - ảnh 4보 응우옌 잡 대장의 집무실 (사진: 폭 타이/vovgiaothong.vn)
D67호 벙커에서 가장 특별한 유물 중 하나는 ‘1번 전화기’라는 명칭의 전화기이다. 이 전화는 호찌민 주석의 주석궁 관저 내 냐산(nhà sàn)이라는 전통 가옥에 설치된 전화기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으며, 작전국 지휘관들이 국가주석의 문의에 즉시 답하거나, 전선에서 근무 중인 간부 및 병사들에게 격려를 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1975년 이후 이 벙커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관람이 가능해졌다. D67호 건물과 지하벙커는 국내외 많은 방문객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베트남의 군사 역사를 이해하고자 찾는 대표적인 역사 탐방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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