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VWORLD) - 최근에 새로 통합된 호안끼엠(Hoàn Kiếm)동에 위치한 항보 거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272미터 길이, 폭 6미터로 뻗어 있습니다. 항다오(Hàng Đào)-항응앙(Hàng Ngang) 사거리에서 시작하여 항티엑(Hàng Thiếc)-투옥박(Thuốc Bắc)-밧단(Bát Đàn) 사거리까지 이어지며, 항껀(Hàng Cân)-르엉반깐(Lương Văn Can) 사거리를 가로지릅니다. 호안끼엠 호수에서 북쪽으로 300미터 남짓, 동쑤언(Đồng Xuân) 시장에서는 약 500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경민: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하고, 다채로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베트남! 베트남의 거리마다 깃들어 있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시간, ‘베트남 거리거리 알아보기’ 코너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이 시간 함께할 베트남 역사와 문화에 푹 빠진 한국인, 염경민입니다.
홍응옥: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경민 씨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드릴 ‘설명봇’, 베트남 MZ 기자 홍응옥입니다.
경민: 네 청취자 여러분, 하노이의 직업 거리들을 알아보는 여정, 오늘도 계속됩니다. 오늘은 옛 정취와 역사, 그리고 활기찬 수도 시민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항보(Hàng Bồ) 거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흥응옥: 최근에 새로 통합된 호안끼엠(Hoàn Kiếm)동에 위치한 항보 거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272미터 길이, 폭 6미터로 뻗어 있습니다. 항다오(Hàng Đào)-항응앙(Hàng Ngang) 사거리에서 시작하여 항티엑(Hàng Thiếc)-투옥박(Thuốc Bắc)-밧단(Bát Đàn) 사거리까지 이어지며, 항껀(Hàng Cân)-르엉반깐(Lương Văn Can) 사거리를 가로지릅니다. 호안끼엠 호수에서 북쪽으로 300미터 남짓, 동쑤언(Đồng Xuân) 시장에서는 약 500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경민: 항보 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된 거리로, 동타인(Đông Thành) 지역과 옛 항다오 거리 초입의 둑을 연결했습니다. 이 거리의 동쪽 구간은 쑤언옌(Xuân Yên) 마을 땅에 위치했고, 항디에우(Hàng Điếu)와 투옥박 거리와 접하는 서쪽 구간은 옛 토쓰엉(Thọ Xương) 현 투언미(Thuận Mỹ) 총에 속했던 년노이(Nhân Nội) 마을의 땅이었습니다.
항보라는 이름의 ‘보(Bồ)’자는 대나무나 갈대로 엮어 만든 커다란 바구니나 통을 의미합니다. 큰 ‘보’는 주로 쌀을 담는 데 사용되었고, 작은 ‘보’는 소금이나 쌀을 담는 데 쓰였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바구니 거리’라는 뜻의 ‘Rue des Paniers’로 불렸습니다.
홍응옥: 19세기 말, 항보 거리는 ‘항잽(Hàng Dép)’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실제로 그 당시에는 베트남말로 잽(Dép)라고 하는 짚신과 나막신을 파는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몇십 년이 흐른 뒤, 많은 가구들이 대나무 망태기를 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설 명절이 되면 길가에 망태기가 가득 쌓였고, 지방에서 하노이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물건을 담을 망태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20세기 초, 항보 거리에는 낌득장(Kim Đức Giang) 인쇄소 외에도 레끄엉(Lê Cường) 출판사와 홍케(Hồng Khê) 인쇄소가 75번지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 인쇄소는 처음에는 홍케 약방의 약품 전표, 포장재, 상품 소개 책자를 전문적으로 인쇄했지만, 나중에는 문학 서적, 소설, 연구 서적까지 출판했습니다.
경민: 1945년 이전에는 설날이 다가오면 항보 거리 인도에 많은 서예가들이 먹과 붉은 종이를 펼쳐 놓고 글씨를 써서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춘련(春聯)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주로 도매를 하는 큰 상점들의 처마 밑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미리 써 놓은 대련과 화려한 연통을 벽에 걸어 두었죠. 돗자리 아래에는 먹물통, 붓통, 그리고 갖가지 색깔의 종이 뭉치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항보 거리는 또한 설날 그림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가게에서 동호(Đông Hồ) 마을과 항쭝(Hàng Trống) 마을 사람들이 조(dó) 종이로 만든 다양한 민속화를 가져와 벽에 걸고 길가에 진열했는데,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등 선명한 색깔들이 빛났다고 합니다. 닭 그림, 돼지 그림, 쥐들의 결혼식 그림 등 없는 것이 없었답니다.
홍응옥: 항보 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전통 향(hương) 제작이라는 유서 깊은 공예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항보 거리는 하노이 최고의 재봉사들을 사로잡는 독특한 상품, 바로 의류 부자재로도 유명해졌습니다.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작고 예쁜 단추부터 징, 스냅 단추, 아기자기한 작은 꽃 무늬, 반짝이는 구슬, 우아한 리본, 비단실, 알록달록한 후크, 지퍼, 그리고 수천 가지의 자수 샘플까지, 이 모든 것을 항보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수공예품이 가득한 흥미로운 거리죠?
경민: 오늘날, 항보 거리는 여전히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현대 도시의 빠른 흐름에 맞춰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기와지붕과 나무문, 철제 발코니를 가진 옛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오늘날의 다채로운 간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홍응옥: 베트남 역사에 관심 있으시다면 항보 51번지를 꼭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이곳은 전국 항전 시기 하노이의 역사적인 유적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47년 1월 6일, 바로 이곳에서 연합지구 1연대가 창설됐고, 이 부대는 이후 수도연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 부대는 전국 항전과 베트남 인민군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집니다. 수도 연대는 1946년 말부터 1947년 초까지 60일 밤낮으로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의 재침략에 맞서 하노이를 용감하게 방어했던 부대입니다. 또한 이곳은 중앙 구국 노동자회와 북부 지역 당 위원회의 본부였으며, 베트남 독립동맹(약자 베트민) 지역 위원회의 사무실이기도 했습니다. 식민주의자들의 발길이 수도에서 사라진 후에는 라오동(Lao Động, 노동) 신문사가 되었습니다.
많은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하노이 구시가지의 특징인 기와지붕과 튜브형의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을 일부 보존하고 있습니다. 1947년 1월 6일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몇몇 유적 표지판과 자료들이 이곳에 설치되어 후세에게 애국심의 전통을 기억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경민: 항보 거리에 오시면 다양한 매력적인 먹거리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하노이 전통 퍼(phở, 쌀국수)부터 따뜻한 짜오스언(cháo sườn, 갈비죽), 분지에우(bún riêu, 게살 쌀국수), 반꾸온(bánh cuốn, 말이 쌀국수), 반쎄오(bánh xèo, 베트남식 부침개), 미가띠엠(mỳ gà tiềm, 닭고기 약재 국수), 그리고 쩨동(chè đông, 겨울 쩨), 쩨헤(chè hè, 여름 쩨) 같은 디저트까지 있습니다. 꼭 방문하셔서 베트남 음식을 맛보세요.
홍응옥: 네, 벌써 아쉽지만 오늘 ‘베트남 거리거리 알아보기’ 코너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베트남을 알아가는 여정에서 특정 지명이나 거리 이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희 VOV5 한국어 프로그램의 웹사이트나 팬페이지에 댓글을 남겨 주세요. 또는 이메일 vov5.korea@gmail.com으로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민: 청취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피드백을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방송에서 다시 만나요!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