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응옥: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하고, 다채로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베트남! 베트남 거리마다 깃들어 있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시간, 〈베트남 거리거리 알아보기> 입니다. 안녕하세요, 주변에 보이는 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설명봇’ MZ 기자 홍응옥입니다.
뚱응옥: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 산책을 즐기면서 길거리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거리 탐방가 뚱응옥입니다. 오늘도 이 코너를 홍응옥 씨,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홍응옥: 네 청취자 여러분, 하노이의 중심부, 호안끼엠(Hoàn Kiếm) 호수 근처의 거리들을 둘러보는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곳은요, 후대 사람들에게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황제의 이름이 붙은 곳, 바로 레타인똥(Lê Thánh Tông) 거리입니다.
뚱응옥: 호안끼엠 지역의 지도를 들여다보면, 레타인똥 거리는 마치 하노이의 가장 중요한 문화 공간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푸릇푸릇한 비단띠처럼 보입니다. 길이는 약 558미터로 다소 아담하고, 폭은 12에서 15미터 남짓한데요. 이 거리는 참으로 이상적인 공간 비율을 자랑합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만큼 충분히 넓으면서도, 역사적인 도심 특유의 고즈넉함을 고스란히 간직할 만큼 아늑하게 좁기도 하니까요.
오늘 우리의 여정은 서양 문화 예술의 상징인 하노이 오페라하우스 바로 앞,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8월 19일(1945년 베트남 8월 혁명이 치러진 날) 광장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출발한 거리는 당타이턴(Đặng Thái Thân), 하이바쯩(Hai Bà Trưng)과 같이 고전적인 프랑스식 도시 계획의 숨결이 짙게 배어 있는 교차로들을 관통하며 뻗어나갑니다. 그리고 쩐흥다오(Trần Hưng Đạo) 거리와 한투옌(Hàn Thuyên) 거리가 만나는 북적북적한 오거리에서 그 끝을 맺게 되죠. 현재 레타인똥 거리는 하노이시 끄어남(Cửa Nam) 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응옥: 아마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실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레타인똥 거리의 아스팔트 바닥이, 사실은 옛 탕롱 황성을 둘러싸고 있던 동쪽 흙성벽의 터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곳은 한때 황성과 홍(Hồng)강 연안의 늪지대를 가로막는 높은 지대였고, 그 근처에는 조정의 수군 병사들을 훈련시키던 투이꾸언돈(Thủy quân đồn), 즉 수군진도 있었습니다. 이 거리의 양 끝은 옛 옹성문들의 위치이기도 한데요. 북쪽으로는 현재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오떠이롱(Ô Tây Long)이, 남쪽으로는 오년호아(Ô Nhân Hòa)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뚱응옥: 그런데 말이죠,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지역의 모습은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옛 성벽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아주 널찍한 보비요(Bobillot) 대로가 들어서게 된 것이죠. 1945년 쩐 반 라이(Trần Văn Lai)) 시장 재임 시절에 이르러서야, 주권과 민족적 자부심을 굳건히 다지기 위해 비로소 레타인똥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붙게 되었습니다. 이 거리의 역사는 1946년 12월의 영웅적인 순간들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 구역 바로 그곳에서, 전국 항전의 총성이 울려 퍼졌거든요. 그 자욱한 매연 속에서 베트남 전사들은 학교 구역에 갇혀 있던 30여 명의 주민들을 용감하게 구출해 내며, 도심 한복판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굽히지 않는 용맹함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홍응옥: 그렇다면 왜 수도 하노이에서 가장 지성적인 거리 중 하나에 레타인똥 즉 레 성종(黎聖宗, 1442~1497년) 황제의 묘호가 붙게 되었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15세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합니다. 1442년 8월 25일, 고풍스러운 후이반(Huy Văn) 사찰에서 레 뜨 타인(Lê Tư Thành) 이라는 이름의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레 태종(黎太宗) 황제와 응오 티 응옥 자오(Ngô Thị Ngọc Giao) 후궁 사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저 화려한 궁궐에서만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피난 생활을 하며 서민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나날들이 더 많았죠.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의 생생한 경험들이,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기쁨을 나중에 즐긴다”는 훌륭한 군주를 빚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1460년, 18세의 나이로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 그는 꽝투언(Quang Thuận, 光順)에 이어 홍득(Hồng Đức, 洪德)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베트남 봉건 역사상 최장기 집권 기록인 무려 38년의 재위 기간 동안, 그는 대월(大越, 오늘날의 베트남) 모든 면에서 눈부신 황금기인 ‘홍득의 태평성대’로 이끌었습니다.
뚱응옥: 세상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황제였으며, 경전과 역사는 물론 수학에까지 정통했다고 합니다.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단순한 권력이 아니라, 번뜩이는 지혜와 결단력 있는 개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국가의 지도를 새롭게 그렸고, 이른바 ‘홍득 지도’죠. 중앙에서 지방까지 행정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전국을 13개의 도(道)로 재편했습니다. 특히 그가 반포한 ‘홍득 법전’은 입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데요. 당시 많은 서양 국가들조차 해내지 못했던 여성, 노인, 장애인의 권리 보호와 같은 무척이나 진보적인 규정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 성종 황제는 국가를 다스릴 때 그저 철석같이 단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예술가적 기질도 다분했죠. 하늘의 28수 별자리에 비견되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 28명을 모아 ‘따오단’(Tao Đàn, 騷壇)이라는 문학회를 창설하고, 본인 스스로 도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응우옌 짜이(Nguyễn Trãi, 阮廌)의 누명을 벗겨준 것도, “현명한 인재는 국가의 원기이다”라는 사상을 굳건히 하며 문묘에 진사비를 세우도록 한 것도 바로 그였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도 그는 남쪽으로는 꾸몽(Cù Mông) 고개(현재 베트남 남중부 자라이 및 닥락성에 속함)까지 영토를 넓히고 서쪽 국경을 안정시킨 뛰어난 지휘관이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산 한 자, 강 한 치인들 어찌 내버릴 수 있겠는가?”라는 단호한 관점을 늘 굳건히 지켰죠. 참으로 대단합니다.
역사가 판 후이 쭈(Phan Huy Chú)가 레 성종 황제를 두고 “베트남 역대 명군들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라고 평가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는 문화, 교육, 법률 등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유산을 남기며, 자강하고 문명화된 민족의 정체성을 세우는 굳건한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홍응옥: 네 현대 도시의 숨 가쁜 흐름 속에서도, 레타인똥 거리는 옛 하노이의 혼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용히 그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저 걷기 좋은 아름다운 거리를 넘어서, 베트남 최고의 교육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는 이른바 ‘지식의 성전’이라고도 불립니다.
뚱응옥: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곳은 레타인똥 거리 13번지에서 15번지에 위치한 하노이 약학대학입니다. 이 학교의 전신은 1902년, 저명한 의사 알렉상드르 예르생(Alexandre Yersin)의 지도 아래 설립된 인도차이나 의학대학의 약학부입니다. 1904년에 지금의 레타인똥 거리로 정식 이전하였고, 1923년에서 1926년 사이에 현재의 건축 양식을 완성했습니다. 프랑스식 낡은 목조 계단과 고즈넉한 기와지붕, 그리고 특유의 샛노란 외벽을 자랑하는 이 학교는 위엄 있으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인도차이나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1세기가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곳은 전국 최고의 약사 양성 중심지이자, 베트남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심층 과학 연구의 요람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응옥: 바로 옆 19번지에는 하노이 종합대학, 즉 현재의 하노이 베트남 국가대학 및 자연과학대학의 상징적인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인도차이나 대학교의 본부였던 이곳은 1924년 건축가 에르네스트 에브라르(Ernest Hébrard)가 설계한 걸작입니다. 유럽의 신고전주의 구조와 팔각형 다층 기와지붕 같은 현지 건축 양식이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어, 앞서 말씀드린 ‘지식의 성전’이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죠. 특히 내부의 으뜸가는 백미는 응우이 느 꼰 뚬(Ngụy Như Kon Tum) 대강당에 있는 77제곱미터 규모의 거대한 벽화입니다. 화가 빅토르 타르디외(Victor Tardieu)가 무려 6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200명의 인물을 통해 20세기 초 베트남 사회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냈으며, 지식이 빈곤과 불평등을 몰아낼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세기를 뛰어넘는 학문의 정신을 계승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 과학자들을 길러내는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뚱응옥: 그런데 말이죠, 시끌벅적한 대형 쇼핑몰들과는 달리, 오늘날의 레타인똥 거리는 정적과 문화적 품격을 찾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입니다. 시끄러운 유흥 시설 대신, 품격 있는 문화 공간과 고급스러운 미식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대학교 맞은편에 있는 1,550제곱미터 규모의 따오단 정원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셔도 좋습니다. 수백 년 된 사구나무 그늘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며, 베트남과 쿠바의 우정을 상징하는 호세 마르티(Jose Marti) 기념비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거든요. 조용한 카페를 찾으신다면, 레타인똥 6번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 보십시오. 영감이 넘치는 예술 워크숍이 자주 열리는 그린 오아시스(Green Oasis)나 플로라 카페(Flora Café)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죠? 미식을 원하신다면 4A번지에 있는 룩락(Luk Lak) 레스토랑에서 정갈한 베트남 요리를 맛보시거나, 거리 초입에 있는 힐튼 하노이 오페라(Hilton Hanoi Opera) 호텔의 레스토랑들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아주 우아하고 럭셔리한 만찬을 즐기실 수도 있습니다.
홍응옥: 네,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우리 레타인똥 거리가 단지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곳은 현명한 성군의 영혼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자, 수많은 지식인 세대의 진정한 ‘성전’이며, 역사적 유산과 현대의 삶이 귀중한 정적 속에서 매일 자연스레 교차하는, 하노이의 가장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퉁이입니다.
뚱응옥: 네, 지금까지 저희는 하노이의 레타인똥 거리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제 〈베트남 거리거리 알아보기〉 코너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는데요. 끝까지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베트남을 하나씩 알아가는 여정 속에서, 혹시 이름이 궁금한 지명이나 거리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저희 VOV5 한국어 프로그램 웹사이트나 팬페이지 댓글, 또는 이메일 vov5.korea@gmail.com으로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홍응옥: 네, 청취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거리 추천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동네도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곳이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