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차게 도약하는 베트남

(VOVWORLD) - 2000년대 초반 처음 베트남을 방문한 뒤 여러 차례 이 작지만 강인한 나라를 다시 찾은 프랑스 언론인 알랭 토마(Alain Thomas) 씨는, 베트남 사회의 눈부신 변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힘차게 도약하는 베트남 - ảnh 1                                            베트남 사회의 눈부신 변모 (사진: VOV)

알랭 토마 기자에 따르면, 50년 전 1975년 4월 30일에 베트남군 탱크가 통일궁 정문을 무너뜨린 순간은 수십 년간의 외세의 지배를 받던 시대를 끝맺고, 호찌민 주석의 영도 아래 1945년 독립을 선언한 한 베트남 민족의 역사적인 승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알랭 토마 기자에게 있어 그 순간은 베트남 국민 스스로 정치적, 경제적 운명을 결정하게 된 분수령과 같았다. 

베트남은 작지만, 한때 불패의 신화로 여겨졌던 강대국들을 연이어 격파한 국가이자 아시아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에서 굳건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생생한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힘차게 도약하는 베트남 - ảnh 2프랑스 언론인 알랭 토마(Alain Thomas) 씨 (사진: 흐엉 짱/베트남 통신사)
이와 더불어 알랭 토마 기자는 베트남 도시 지역 중산층의 눈부신 성장을 강조하며, 생활 수준의 뚜렷한 향상과 함께 국내 소비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호평했다. 

그는 특히 베트남이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시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며, 학업 및 업무에서 보여주는 근면성실하고 규율 있는 태도가 베트남이 글로벌 경제 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상할 수 있는 잠재력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그는 지난 50년간 베트남의 견고한 정치‧사회적 안정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뚜렷한 변동이나 심각한 사회적 갈등 없이 유지되고 있는 안정적인 사회 분위기는 베트남이 격동의 기술 시대와 글로벌화 시대에서 흔들림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버팀목이 것으로 전망된다.”

 힘차게 도약하는 베트남 - ảnh 3베트남 전쟁의 ‘설계자’로 불렸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전 미국 국방장관의 아들인 크레이그 맥나마라(Craig McNamara) 씨 (사진: 미 하인/qdnd.vn)

또한 알랭 토마 기자는 베트남 국민이 과거 외세의 강대국들을 숱하게 격파한 불굴의 민족이며, 그러한 정신이 여전히 공동체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기자는 이러한 강인한 기질과 끈끈한 결속력, 그리고 강직한 정신이 앞으로 베트남 민족의 도약의 여정에서 다가올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 3월 초, 베트남 전쟁의 ‘설계자’로 불렸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전 미국 국방장관의 아들인 크레이그 맥나마라(Craig McNamara) 씨가 베트남을 방문했다. 

 힘차게 도약하는 베트남 - ảnh 4           쯔엉선(Trường Sơn) 국립묘지에서 방문한 크레이그 맥나마라(Craig McNamara) 씨                     (사진: 인물 공급)

베트남 군대의 창설, 전투, 승리의 역사를 담은 수십만 점의 유물, 기록,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을 방문한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그는 화해의 상징처럼 미국과 베트남 국기 배지 두 개를 양복 깃에 나란히 달아 눈길을 끌었다. 

방금 베트남 군사 역사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뇌리에 깊이 박히게 것은 평화라는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놓쳐버린 수많은 기회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저는 오늘 자리에 참석해 여러분의 선조와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논의하고 배우고자 합니다. 군사 역사 박물관 방문을 통해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1주일이 넘는 베트남 체류 기간 동안 6개 성시를 방문했다. 그는 다낭 해변, 맥나마라(McNamara) 라인, 따껀(Tà Cơn) 비행장, 홍프억(Hồng Phước) B1 기지, 이아드랑(Ia Đrăng) 등 아버지의 전쟁 시절 발자취가 서린 곳들을 두루 돌아보았다. 그는 또한 쯔엉선(Trường Sơn) 국립묘지에서 참배하고, 미라이(Mỹ Lai) 학살이 벌어진 선미(Sơn Mỹ)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베트남 고위지대인 자라이에서 직접 전투에 참전했던 베트남 참전 용사 두 명을 만났다. 쯔엉선 국립묘지에 도착한 그는 수백 개의 묘지에 분향하고 1950년에 전사한 한 열사의 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그 자리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 열사가 전사한 날은 바로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고(故) 응우옌 잡(Võ Nguyên Giáp) 장군이 생전 “당신들은 우리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우리 부친(로버트 맥나마라)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부친께서 베트남에 오셔서 베트남의 유구한 역사와 베트남인, 그리고 통일된 민족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내내 베트남에서 치러진 전쟁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았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간의 미래를 건설하는 일조하고 싶습니다.”

 힘차게 도약하는 베트남 - ảnh 5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 및 자라이에서 직접 전투에 참전했던 베트남 참전 용사
크레이그 맥나마라 씨는 여생을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 극복 활동, 특히 그의 아버지가 미국 국방부 장관으로 8년간 재직하며 베트남에 살포 결정을 내렸던 고엽제‧다이옥신으로 인한 후유증 해결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했던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자신의 변화 과정을 담은 회고록 『우리 아버지의 거짓말 - 베트남에서 오늘날까지의 진실과 가족 회고록』(영어 제목: Because Our Fathers Lied: A Memoir of Truth and Family, from Vietnam to Today) 베트남어판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도서는 그가 어떻게 열렬한 반전 운동가로 거듭났는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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