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이번 방송부터 「베트남 멜로디 산책」에서는 현대 베트남 음악의 형성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여정의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故 작곡가 반 까오(Văn Cao)입니다.
반 까오의 본명은 응우옌 반 까오(Nguyễn Văn Cao)로, 1923년 하이퐁(Hải Phòng)에서 태어나 1995년 하노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작곡가이자 시인, 화가였으며, 베트남 국가인 「진군가 - Tiến quân ca」의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혁명기의 장엄한 노래들을 작곡하기에 앞서 반 까오는 시적 정서가 풍부한 서정가요를 통해 이미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영향을 뚜렷하게 받았던 전쟁 이전 시기의 많은 작곡가들과 달리, 반 까오의 음악은 동양적인 색채가 짙습니다. 그는 오음음계(五音音階)를 즐겨 사용했으며, 가을과 강, 달빛, 배, 악기 소리처럼 동양적 정서를 환기하는 친숙한 이미지들을 작품 속에 자주 담아냈습니다.
오늘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초기 창작 시기를 대표하는 네 작품, 「가을이 지는 슬픔 - Buồn tàn thu」, 「봄날의 선착장 - Bến xuân」, 「쯔엉찌 - Trương Chi」 그리고 「천태 - Thiên Thai」를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할 곡은 故 인민예술인 레중(Lê Dung)의 목소리로 듣는 「가을이 지는 슬픔 - Buồn tàn thu」입니다. 이 작품은 반 까오 작곡가가 매우 젊은 시절에 작곡한 그의 첫 번째 노래입니다. 노래는 고요하고 쓸쓸한 가을의 풍경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Em ngồi đan áo”, 즉 ‘내가 앉아 옷을 뜨개질한다’는 이미지는 한 사람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과 한 땀 한 땀에 스며든 그리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밖에서는 노란 잎이 떨어지고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지만, 여인은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옷은 언젠가 완성될 수 있지만, 그녀의 기다림은 끝을 알 수 없는 듯합니다. 부드러운 오음음계의 선율을 통해 「가을이 지는 슬픔 - Buồn tàn thu」는 쓸쓸하면서도 섬세하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그럼 故 인민예술인 레 중(Lê Dung)의 목소리로 「가을이 지는 슬픔 - Buồn tàn thu」를 함께 감상하시겠습니다.
♫ BUỒN TÀN THU ♫
「가을이 지는 슬픔 - Buồn tàn thu」가 기다림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라면, 「봄날의 선착장 - Bến xuân」은 자연과 사랑이 함께 깨어나는 보다 밝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을 펼쳐 보입니다.
노래의 첫 구절인 “nhà tôi bên chiếc cầu soi nước” 즉 ‘우리 집은 물에 비치는 다리 곁에 있다’에서부터 반 까오는 강나루와 다리, 물이 어우러진 친근한 풍경을 그려냅니다. 그러한 공간에 한 여인이 등장하면서 주변의 모든 풍경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새소리와 햇빛, 사람의 발걸음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평범했던 강나루는 황홀한 기억의 공간으로 바뀝니다.
자연 역시 사람처럼 생명을 얻습니다. 마치 기뻐할 줄 알고, 귀 기울여 들을 줄 알며, 인간의 사랑을 바라보며 질투까지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눈부신 봄 풍경의 이면에는 어딘지 모를 아련함도 남아 있습니다. 만남이 아름다울수록 그 행복이 얼마나 연약하고 덧없는 것인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봄날의 선착장 - Bến xuân」은 사랑이 시작되는 장소인 동시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간직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럼 가수 쩐 투 하(Trần Thu Hà)의 목소리로 「봄날의 선착장 - Bến xuân」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 잠시 마음을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 BẾN XUÂN ♫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지금 VOV5 한국어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송되는 「베트남 멜로디 산책」을 듣고 계십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작품들을 통해 현대 베트남 음악의 형성에 기여한 뛰어난 음악가들의 세계를 함께 만나보고 있습니다.
봄날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봄날의 선착장 - Bến xuân」의 강나루를 떠나,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강가로 향합니다. 그곳에서는 한밤중에 청년 쯔엉 찌(Trương Chi)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퍼지고 나서야 비로소 달과 물, 그리고 강이 하나의 예술적 공간으로 변화했습니다.
이 곡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가난한 어부 쯔엉 찌와 화려한 누각에서 살아가는 미 느엉(Mỵ Nương) 아가씨에 관한 베트남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 느엉은 쯔엉 찌의 노랫소리를 사랑했지만, 그의 못생긴 외모를 보고 결국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아름다운 사랑은 비극으로 변하고 말았고요. “Trăng nước chưa thành thơ”, 즉 ‘달과 물은 아직 시가 되지 않았다’라는 구절은 아직 고요 속에 잠겨 있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쯔엉 찌의 노랫소리가 울려 나룻배와 적막한 나루터, 달빛과 안개 같은 이미지들은 이 이야기를 현실과 꿈의 경계에 놓인 듯한 신비로운 세계로 이끌어갑니다. 노랫소리는 강을 건너 먼 곳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쯔엉 찌의 비극은 곧 예술가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예술을 사랑하지만, 정작 그 예술을 창조한 사람은 외로움 속에 남겨집니다. 그렇기에 쯔엉 찌라는 인물은 종종 반 까오 자신과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합니다. 음악 속에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열망을 담아냈던 예술가의 모습이 그 안에서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가수 팜 투 하(Phạm Thu Hà)의 목소리로 「쯔엉 찌- Trương Chi」를 감상하시겠습니다.
♫ TRƯƠNG CHI ♫
청취자 여러분,
오늘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할 곡은 故 반 까오 작곡가의 음악 인생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천태 - Thiên Thai」입니다.
「Thiên Thai」는 신선 세계에 들어간 한(漢) 나라에 살았던 류신(劉晨)과 완조(阮肇)의 고사와 동양 문화에서 전해지는 무릉도원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곡의 악보는 1944년 후에(Huế)의 띤호아(Tinh Hoa)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반 까오는 스스로를 ‘응으(Ngự)강의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이 작품이 강과 물의 풍경, 그리고 당나라 시가 지닌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94개의 오선으로 이루어진 「천태 - Thiên Thai」는 한편으로는 장편 서사곡과 같은 면모를 지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음악적 풍경을 보는 듯한 작품입니다. 물결 위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따라, 청취자는 배와 안개, 복숭아꽃을 지나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세계로 이끌려 들어갑니다.
‘바로 이곳이 천태(天台)의 세계’라는 노랫말은 인간이 마침내 꿈속에서만 존재하던 이상향에 발을 들였음을 선언하는 듯합니다. 그곳에서는 봄꽃이 시들지 않고, 늙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도 뒤에 남겨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류신과 완조는 결국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자신들이 알던 세계가 이미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되고, ‘바로 이곳이 천태(天台)의 세계’라는 노랫말은 인간이 마침내 꿈속에서만 존재하던 이상향에 발을 들였음을 선언하는 듯합니다. 그곳에서는 봄꽃이 시들지 않고, 늙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도 뒤에 남겨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류신과 완조는 결국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자신들이 알던 세계가 이미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되고, 신선 세계로 돌아가는 길 역시 다시는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천태 - Thiên Thai」는 단순히 행복한 이상향을 노래하는 작품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단 한 번만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아쉬움과 그리움까지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럼 가수 아인 뚜옛(Ánh Tuyết)의 목소리로 「천태 - Thiên Thai」를 감상하시겠습니다.
♫ THIÊN THAI ♫
청취자 여러분,
오늘 소개해드린 네 곡을 통해 우리는 故 반 까오 작곡가가 창작 활동을 시작하던 초기 시기의 서정적 세계를 함께 여행했습니다.
띄워 드린 이 작품들에는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었고, 또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던 한 예술가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반 까오는 소리로 색채를 만들어내고, 선율로 공간을 펼쳐 보이며, 오래된 이야기들을 빌려 사랑과 고독, 그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열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도 「베트남 멜로디 산책」과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혁명기의 색채가 짙게 드러나는 반 까오 작곡가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에 담긴 장엄하고 힘찬 울림을 계속해서 만나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티엔 타인이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