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 입’ 베트남>의 ‘늘 배고픈 통통이’ 리입니다.

타인: 안녕하세요, 저는 리 씨의 동행자, ‘식복(食福)’ 많은 타인입니다. 오늘 이 친숙한 공간에서 여러분을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리 씨, 오늘 우리의 '미식 나침반'은 어느 지역을 가리키고 있나요?

리: 오늘은 고도(古都) 후에(Huế)의 낭만적인 흐엉(Hương)강가에 잠시 머물러 보려 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무척 소박하지만, 알고 보면 놀라울 만큼 많은 정성이 담긴 음식입니다. 바로 '껌헨(Cơm Hến, 재첩 비빔밥)'인데요. 오늘은 이 음식을 함께 알아보려고 합니다.

타인: 오, 껌헨이요? 베트남 문학에서 껌헨은 단순한 요깃거리가 아니죠. 고(故) 호앙 푸 응옥 뜨엉(Hoàng Phủ Ngọc Tường) 작가는 저서 <후에 - 유적과 사람> 중 '껌헨 이야기'라는 산문에서 이 음식을 '살아 있는 문화 유적'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후에의 껌헨은 2025년 4월 테이스트아틀라스(TasteAtlas)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조개류 요리 50선>에서 31위를 차지하기도 했답니다.

리: 재첩살을 밥과 함께 비벼 먹는다고 하니 한국 청취자 여러분께도 낯설면서도 꽤 친숙하게 들리실 텐데요, 그렇죠?

타인: 친숙한 이유는 한국에도 아주 맛있는 비빔밥, 바로 '꼬막비빔밥'이 있기 때문이겠죠. 특히 강릉이나 여수 같은 바닷가 지역에서 아주 유명하잖아요, 리 씨?

리: 맞습니다. 두 음식 모두 훌륭한 조화의 정신을 담고 있어요. 조개류 특유의 달큰하고 고소한 맛을 살려 밥, 채소와 함께 비벼 먹는다는 점이죠. 꼬막비빔밥 한 그릇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꼬막에 고추장, 간장, 참기름, 깻잎이 어우러진 매콤달콤한 양념장으로 입맛을 사로잡는다면, 후에의 껌헨은 완전히 다른 풍미와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헨(hến·가막조개/재첩류)의 크기와 곁들이는 양념에 있어요, 여러분. 흐엉강에서 잡히는 이 재첩은 새끼손가락 끝만큼 작지만 재첩살이 무척 달고 향긋하답니다.

타인: 그뿐만이 아니죠. 한국인들이 갓 지은 밥의 뜨끈하고 찰진 맛을 사랑한다면, 후에의 껌헨에는 아주 별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무조건 '찬밥'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식어서 꼬들꼬들해진 밥알이 짭조름하게 볶은 조갯살, 향긋한 ‘맘루옥(mắm ruốc·베트남 새우젓 한 종류)’과 어우러질 때, 갓 지은 밥의 뜨거운 김에 채소가 숨이 죽는 것을 막아 아삭한 식감을 그대로 살릴 수 있거든요.

타인: 이렇게 독특하고 풍미 깊은 음식인 껌헨은 대체 어디서 유래한 건가요?

리: 껌헨은 소박한 강변 모래톱에서 탄생해 궁중에까지 올랐다가, 다시 서민들의 식탁으로 돌아온 흥미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노동(Lao Động) 신문의 <후에 빈민의 음식에서 황제에게 진상하던 특산물이 된 껌헨>과 꼰 지역의 민속 사료 등 연구 자료와 후에 사람들에게 구전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음식은 약 200년 전 응우옌(Nguyễn, 阮) 왕조 시절 또는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다고 해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어느 날 꼰(Cồn) 마을에 살던 가난한 후인(Huỳnh) 씨 성을 가진 할머니네 가족이 그물질을 나갔지만 물고기나 새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온 가족이 굶는 것을 볼 수 없었던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잡아온 재첩을 삶고 볶아서 남은 찬밥과 섞어 비볐습니다. '하루 허기를 달래려던' 그 끼니가 뜻밖에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그 소문이 온 마을에 쫙 퍼졌다고 하죠.

타인: 그리고 나서 이 소박한 음식이 황궁으로 들어가게 된 건가요?

리: 맞습니다. 노동 신문, ‘후에 탐구(Khám phá Huế)’ 전문 웹사이트 등 유력 언론에 게재된 연구 기사와 역사 자료에 따르면, 19세기 말 응우옌 왕조의 타인타이(Thành Thái) 황제 시절, 응우옌 티 탭(Nguyễn Thị Thẹp)이라는 여성이 ‘꼰헨(cồn Hến)’에서 수확한 재첩으로 이 소박한 비빔밥을 만들어 황제께 진상했습니다. 놀랍게도 산해진미에 익숙했던 황제이 고향의 정이 물씬 느껴지는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의 껌헨에 푹 빠져버린 거예요. 황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꼰헨 지역에 '장헨(Giang Hến)' 동을 설치하도록 명했습니다. 그 이후로 껌헨은 명절이나 새해마다 황제에게 올리는 정식 진상품이 되었죠.

타인: 역시 껌헨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이 음식의 요람인 '꼰헨'을 빼놓을 수 없겠네요. '꼰헨'은 흐엉강 가운데 떠 있는 푸르고 작은 모래섬이고 껌헨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어요.

리: 정통 후에식 껌헨 한 그릇을 완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들을 언뜻 보면 그저 즉흥적으로 모아놓은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이 지역 사람들의 아주 세심하고 까다로운 배치의 예술이 숨어 있습니다.

타인: 정확합니다. 이 까다로움에 대해 청취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후에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후에의 소박한 껌헨'에 출연한 홍 로안(Hồng Loan) 미식 장인의 말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 음식의 주재료는 재첩과 재첩 우린 물입니다. 옛날에는 주로 우리 마을 섬의 재첩을 썼는데, 양쪽 강기슭에서 퍼 올리면 정말 많았죠. 섬의 재첩과 흐엉강의 재첩은 아주 작지만, 특히 끓였을 때 국물이 정말 달큰합니다. 다른 지역의 재첩이 크기는 더 커도, 이곳 후에의 재첩처럼 달고 고소한 맛은 나지 않아요. 껌헨은 아주 소박한 음식이지만, 굉장히 많은 정성이 들어가고 여러 단계를 거치며 다양한 양념이 어우러져 무척 깊은 맛을 냅니다. 그러면서도 음양의 조화가 아주 잘 이루어져 있죠.”

타인: 홍 로안 장인도 완벽한 껌헨 한 그릇을 위해 수십 가지의 양념과 향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껌헨에는 후에의 각종 향채들이 들어가는데 얇게 썬 바나나 꽃, 병풀, ‘스(sứ)’ 바나나 줄기 안쪽의 얇은 껍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달콤한 토란대, 잘게 썬 신 스타프루트, 고수, 데친 숙주도 절대 빠져선 안 됩니다.”

리: 재첩과 채소 외에도, 향이 진동하는 후에의 ‘맘루옥’, 바삭하게 튀긴 돼지비계(tóp mỡ·똡머), 기름에 볶아 고소한 땅콩, 향긋한 볶음 참깨, 그리고 혀를 찌르는 매콤한 고추 볶음 소스가 껌헨의 잊을 수 없는 풍미를 완성해 줍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포인트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매운맛'입니다! 맵지 않은 껌헨은 후에의 영혼을 절반이나 잃어버린 거나 다름없어요.

타인: 동양 의학에 따르면 재첩과 찬밥은 모두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에 사람들은 재첩을 끓일 때 항상 신선한 생강 몇 톨을 으깨어 냄비에 넣죠. 먹을 때는 매콤한 찬밥 한 그릇에 뜨끈한 재첩 국물 한 사발이 함께 나옵니다. 식객들은 밥을 먹으면서 재첩 국물을 후루룩 떠마셔 음양의 조화를 맞춥니다. 이렇게 하면 속이 편하고 따뜻해져서 배가 아플 걱정이 없거든요.

리: 이 재첩으로 후에 사람들은 아주 매력적인 변형 요리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가볍게 즐기고 싶은 분들을 위한 ‘분헨(Bún hến, 재첩 쌀국수)’이나 ‘미헨(Mì hến, 재첩 라면)’, 쌀쌀한 밤에 먹기 딱 좋은 재첩 육수로 끓여낸 달큰하고 걸쭉한 ‘짜오헨(Cháo hến, 재첩죽)’이 있죠. 특히 바삭바삭한 구운 라이스페이퍼 ‘바인다(bánh đa)’를 잘라 고소한 땅콩과 베트남 고수인 ‘라우람(rau răm; Persicaria odorata)’ 향채를 곁들인 재첩 볶음을 듬뿍 올려 먹는 '헨 싸오 쑥 바인다(Hến xào xúc bánh đa: )'는 그야말로 꿀맛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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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이야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네요.

리: 그렇다면 청취자 여러분을 위해 후에의 껌헨 맛집들을 얼른 소개해 볼까요~

타인: 고도 후에를 방문할 기회가 생기신다면, 비자동 응빈(Ưng Bình) 거리 7번 골목 64호에 있는 '껌헨 호아동(Cơm hến Hoa Đông)'을 찾아가 보세요. 3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후에의 대표적인 껌헨 맛집 중 하나로, 정통 후에식 껌헨을 맛보기 위해 각지에서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단골 명소입니다. 일반 껌헨 한 그릇 가격은 15,000동, 스페셜 껌헨은 20,000동입니다. 즉, 껌헨 한 그릇에 1,100원도 안 되는 셈이죠.

리: 아니면 한막뜨(Hàn Mặc Tử) 거리 일대로 가보셔도 좋습니다. 꼰헨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이 거리를 따라 맛있는 껌헨 가게들이 꽤 많거든요. 한막뜨 거리 5/9번지의 '껌헨 05 한막뜨', 17번지의 '껌헨 17 한막뜨', 1번지의 '껌헨 덥다(Đập Đá)', 13번지의 '껌헨 뉴이(Như Ý)' 등이 있습니다. 한막뜨 거리 일대의 껌헨 한 그릇 평균 가격은 일반 10,000~20,000동 선이며, 스페셜 메뉴나 조금 더 규모가 큰 식당의 경우 20,000~45,000동 정도입니다. 스페셜을 주문해도 한화로 약 2,500원밖에 안 될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는 걸 알 수 있죠.

리: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탄생해 궁중에까지 올랐고,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식탁을 지켜 온 껌헨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 아닙니다. 후에 사람들의 검소함과 섬세함, 그리고 고향을 향한 깊은 사랑이 담긴 음식이죠.

타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껌헨 한 그릇을 먹고 나면 투박하면서도 은은하고, 소박하면서도 깊이가 있으며, 매콤하면서도 우아한 이 지역의 땅과 사람들의 매력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자, 방송을 마무리하기 전에, 리 씨는 저와 청취자 여러분을 위해 다음 주 방송의 '주인공'을 살짝 알려주실 수 있나요?

리: <'한 입' 베트남>의 다음 회에는 닭고기와 귀한 전통 약재들을 듬뿍 넣어 만든 최고의 보양식을 함께 알아볼 예정입니다.

타인: 청취자 여러분, 어떤 음식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정답은 다음 주 <'한 입' 베트남>에서 확인해 주세요~

리: 그럼 이제 후에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뒤로하며, 남성 가수 ‘쭉년(Trúc Nhân)’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른 <후에의 여인(Nàng thơ xứ Huế)>의 잔잔하고 애절한 멜로디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타인: 그럼 지금…

리: 껌헨을…

타인 + 리: 한 번 드셔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