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베트남의 독특한 미식 문화를 탐험하는 <'한 입' 베트남>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늘 배고픈 통통이' 리입니다.

타인: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리 씨의 먹방 파트너, '식복(食福)' 많은 타인입니다. 요즘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꿀을 바른 듯 따스한 가을볕이 내리쬐고 있는데요, 하노이 거리를 거닐면 기분이 정말 상쾌하더라고요.

리: 정말 그러네요. 하노이의 가을은 언제나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죠. 낭만적인 풍경뿐만 아니라 오직 이맘때만 '만개'하는 독특한 풍미 때문이기도 합니다.

타인: 지난번 살짝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은 하노이 가을의 상징이자 아주 우아한 별미를 청취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텐데요.

리: 네, 바로 '꼼(Cốm)'입니다. 아직 덜 여문 풋찹쌀로 만드는 음식인데요. 농촌의 소박한 먹거리지만, 하노이 사람들의 섬세한 손길을 거치며 수도를 대표하는 세련된 별미로 자리 잡았죠.

타인: 베트남에서 중추절 상차림에는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 한국에서는 가을 하면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는 명절, 추석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이맘때면 한국인들은 햅쌀 가루로 빚어 향긋한 솔잎과 함께 쪄낸 송편을 온 가족이 모여 만들곤 하잖아요.

타인: 정말 흥미로운 문화적 공통점이네요. 수천 년의 벼농사 문화를 가진 베트남 역시 '하늘이 내린 진주(쌀)'에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는 나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찹쌀알이 뽀얗게 ‘우유(수분)’를 머금고 통통해질 무렵, 북부 농부들은 이를 정성스레 수확해 쫀득하고 향긋한 제철 첫 꼼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처음 온 한국 관광객분들이 꼼을 보고 자주 궁금해하시는 점이 하나 있어요. 풋쌀로 만든 음식을 왜 굳이 두 겹의 잎으로 정성껏 포장하는지, 게다가 바깥쪽은 왜 꼭 연잎이어야 하는지 말이죠.

리: 그게 바로 하노이 사람들의 지혜랍니다. 신선한 꼼은 가을의 온도와 건조한 바람에 아주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두 겹의 잎으로 꼼을 싸는데요. 안쪽에는 푸릇푸릇한 '라이(ráy) 잎'을 대어 꼼이 마르거나 딱딱해지지 않고 특유의 촉촉함과 영롱한 비취색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바깥쪽은 넓고 성숙한 연잎으로 감싼 뒤, 그해 수확한 볏짚으로 가볍게 묶어줍니다. 연잎의 맑고 은은한 향이 풋쌀의 달콤한 향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농촌의 정취를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죠.

타인: 네네 그러네요. 그리고 꼼은 배를 채우려고 먹는 음식이 아니라, 조금씩 여유롭게 음미하며 즐기는 아주 우아한 간식이랍니다, 여러분~

리: 꼼의 기원에 대해 말씀드리자면요, 베트남 관광청과 년전(Nhân Dân·인민) 신문에 게재된 음식문화 관련 연구에 따르면, 꼼을 만드는 일은 10~11세기 다이라(Đại La) - 탕롱(Thăng Long) 시대부터 홍(Hồng)강 유역의 벼농사 문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고 합니다. 무려 천 년이 넘는 역사죠. 특히 2019년에는 하노이 메찌(Mễ Trì) 지역의 꼼 제조 기술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가무형문화유산 목록에 공식 등재되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전통 기술의 유산적 가치를 국가가 공신력 있게 보증한 셈입니다.

타인: 미식가들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쫀득하고 향긋한 꼼을 만들어내려면, 꼼 장인의 엄청난 정성과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하겠네요.

리: 그렇습니다. 하노이 남뜨리엠(Nam Từ Liêm)동 메찌하(Mễ Trì Hạ) 마을에서 오랫동안꼼을 만들어 오신 응우옌 투이 항(Nguyễn Thúy Hằng) 아주머니의 인터뷰를 통해 꼼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세심하고 정교한지 짐작해 볼 수 있는데요. 다큐멘터리 '메찌 마을의 1세기가 넘는 가보, 꼼 제조의 정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새벽 일찍 온 가족이 일어나 벼를 베러 나가야 해요. 새벽 3시나 3시 반, 늦어도 4시부터는 절구질을 하고 손님들을 위한 꼼 찰밥을 짓기 시작하죠. 벼를 베어 오면 이삭을 하나하나 다듬고 훑어내어 낱알을 분리한 뒤, 섞여 있는 일반 벼를 골라냅니다. 그런 다음 물에 일면서 속이 비거나 쭉정이인 벼(hạt kẹ)들을 다 걸러내야 비로소 볶기 시작할 수 있어요. 벼 알갱이가 골고루 잘 익고 건조되도록 볶아낸 뒤에 절구에 넣고 찧습니다. 다 찧으면 왕겨가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키질하고 체로 쳐냅니다. 향긋하고 쫀득하며 맛있는 꼼을 만들려면 베트남 북부 지역의 특산 찹쌀인 ‘넵 까이 호아 방(nếp cái hoa vàng)’ 품종을 선택해야 해요. 그래야 손님들이 드실 때 입안에 껍질이 까슬하게 남지 않고 찰지고 맛있는 꼼이 완성되거든요.”

타인: 항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새벽 3시에 일어나 일일이 벼 이삭을 고르고 쭉정이를 씻어내는 것부터, 솥에서 익는 정도를 살피며 볶고 돌절구로 찧어내는 과정까지… 이 모든 것에 끝없는 인내와 일에 대한 깊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알겠네요.

리: 맞아요. 그리고 메찌 마을과 더불어, 수도 하노이의 대표적인 꼼 생산지로 꼽히는 '봉(Vòng) 마을'에는 아주 감동적인 민간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옵니다.

타인: 아, 그 이야기는 저도 알아요! 꺼우저이(Cầu Giấy)동에 위치한 봉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꼼의 기원은 아주 먼 옛날의 어느 재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죠. 수백 년 전 어느 가을, 찹쌀 벼가 뽀얗게 알을 밸 무렵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 둑이 무너지고 온 들판이 물바다가 되었대요. 마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식량을 건지기 위해 허리춤까지 차오른 물속으로 들어가, 채 여물지 않은 풋벼 이삭들을 서둘러 베어와서는 불에 볶아 말려 두고두고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이 음식이 기가 막히게 쫀득하고 달콤한 거예요. 그 후로 여러 세대에 걸쳐 품종을 고르는 법, 장작불 조절, 돌절구를 찧는 박자까지 연구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배고픔을 달래던 서민들의 투박한 음식이 왕에게 진상하는 우아한 별미로 승화된 것이죠.

리: 혹독한 자연재해 속에서도 베트남 농부들은 이처럼 위대한 미식의 걸작을 창조해 낸 셈이네요.

리: 옛 하노이인 ‘짱 안(Tràng An)’ 사람들처럼 생꼼을 제대로 즐기는 것 또한 하나의 예술입니다. 소설가 탁람(Thạch Lam)은 1943년 수필집 <하노이 36거리(Hà Nội băm sáu phố phường)>에서 “꼼은 바쁜 사람을 위한 간식이 아니다.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음미하며 먹어야 한다”라고 썼죠. 꼼을 먹을 때는 숟가락이나 포크 대신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조금 집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면서 풋풋한 쌀의 단물이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맛을 느껴야 합니다.

타인: 거기에 검은 반점이 콕콕 박힌 잘 익은 바나나를 곁들이면 훨씬 더 운치가 있죠! 진하고 달콤한 바나나를 반으로 뚝 잘라 초록빛 꼼에 살짝 찍어 먹는 건데요. 바나나의 달콤함과 꼼의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가을의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리: 신선한 생꼼을 그대로 먹는 것 외에도, 하노이 사람들은 꼼을 활용해 다양하고 특별한 요리들을 개발했어요.

- 연꽃씨 꼼 찰밥(Xôi cốm hạt sen·쏘이 꼼 핫 샌): 쫀득한 꼼을 푹 삶아 고소한 연꽃 씨앗, 곱게 빻은 녹두, 그리고 달콤하게 볶아낸 코코넛 채와 함께 버무려 연잎에 싼 음식입니다.

- 볶음 꼼 & 째 꼼(Cốm xào & Chè cốm): 각설탕과 맑은 칡가루로 쑨 달콤하고 시원한 국물(째)에 부드러운 풋꼼 알갱이를 수놓듯 띄운 디저트로, 선선한 가을 오후에 제격이죠.

- 짜 꼼(Chả cốm): 다진 돼지 목살과 돼지고기 반죽, 그리고 잘 여문 꼼을 섞어 동그랗게 빚은 뒤 가볍게 쪄서 노릇노릇하게 튀겨낸 짭조름한 반찬입니다. 한 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하고 쫄깃하며, 속은 꼼 알갱이가 찰지고 고소하게 씹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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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올가을 하노이를 방문할 계획이 있는 한국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제대로 된 꼼을 맛보는 경험을 절대 놓쳐선 안 되겠죠. 리 씨,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나요?

리: 네, 전통 꼼의 본고장을 찾고 싶으시다면 하노이 메찌동에 위치한 메찌 꼼 마을이나 뜨리엠동에 위치한 봉 마을로 가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른 아침에 이곳을 방문하면 마을 어귀부터 절구 찧는 소리와 고소하게 볶아지는 찹쌀 냄새가 물씬 풍길 거예요. 하노이 구시가지를 산책하신다면, 16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바인 꼼(Bánh cốm)'으로 유명한 항탄(Hàng Than) 거리를 들러보시거나, 호안끼엠 호수 주변이나 냐터(Nhà Thờ) 거리를 걷다가 어깨에 꼼을 매고 다니시는 상인 아주머니들을 찾아보세요. 연잎에 싼 신선한 꼼 100~200g 한 주머니가 보통 40,000~60,000동(한화 약 2,100~3,200원) 정도 하니까, 하노이 가을의 풍미를 부담 없이 즐기기에 아주 좋답니다.

타인: 혹시 선물용으로 구입하고 싶으시다면 찌에우비엣브엉(Triệu Việt Vương) 거리 55번지에 있는 '꼼 포 쓰어(Cốm Phố Xưa)' 가게를 방문해 보세요. 베트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선물 세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혹은 포후에(Phố Huế) 거리 57번지에 위치한 '람옌(Lam Yên)' 가게도 좋습니다. 이곳은 꼼 모찌나 볶음 꼼 앙금을 넣은 구운 과자 등 새롭고 독특한 꼼 디저트로 유명하거든요.

리: 청취자 여러분, 초록빛의 작은 꼼 알갱이는 연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천지의 풍요로움과 농부들의 땀방울, 그리고 하노이 사람들의 우아하고 청아한 기품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타인: 정말 그러네요. 리 씨와 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당장 뛰어나가 꼼 한 봉지를 사들고 구시가지의 한 카페에 앉아, 조금씩 음미하며 가을 하노이 거리를 만끽하고 싶어집니다. 아, 리 씨! <'한 입' 베트남> 다음 회에서는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 어떤 별미를 찾아 떠나게 되나요?

리: 다음 주 방송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보름달을 맞이하며 차리는 전통 명절 상차림에 다 같이 둘러앉아 볼 텐데요. 그 상차림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두 가지 전통 빵입니다. 하나는 향긋하고 노릇노릇하며, 다른 하나는 새하얗고 쫀득한 매력을 가졌죠…정확한 이름과 그 뒤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다음 주에 함께 알아보시죠!~

타인: 정말 달콤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힌트네요. 여러분, 다음 회 방송도 꼭 놓치지 말고 저희와 함께해 주세요.

리: 자, 그럼 오늘 함께한 짙고도 우아한 하노이 가을의 정취를 마무리하며, 하노이 가을의 감성이 듬뿍 담긴 시적인 멜로디를 띄워드립니다. 고(故) 찐 꽁 선(Trịnh Công Sơn) 작곡가의 명곡 <하노이의 가을을 기억하며(Nhớ mùa thu Hà Nội)>, 가수 홍늉(Hồng Nhung)의 목소리로 감상하시겠습니다.

타인: 그럼 지금…

리: 꼼을…

타인 + 리: 한 번 드셔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