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응옥: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하고, 다채로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베트남! 베트남 거리마다 깃들어 있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시간, 〈베트남 거리거리 알아보기> 입니다. 안녕하세요, 주변에 보이는 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설명봇’ MZ 기자 홍응옥입니다.
뚱응옥: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 산책을 즐기면서 길거리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거리 탐방가 뚱응옥입니다. 오늘도 이 코너를 홍응옥 씨,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홍응옥: 네 청취자 여러분 지난 방송에서는 저희가 리 태조 황제가 도읍을 옮기고 ‘탕롱(Thăng Long)’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야기를 전해드렸었죠. 역사 속 탕롱 황성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지, 또 어떻게 눈부시게 발전해서 지금의 하노이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 방송에서는요, ‘호앙지에우(Hoàng Diệu)’ 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찬찬히 짚어보면서 여러분과 함께 옛 탕롱 황성의 자취를 더듬어 보려고 합니다.
뚱응옥: 네, 호앙지에우 길은 하노이 바딘(Ba Đình)동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서요. 하노이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세로축 도로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구체적인 규모를 보면, 총길이가 자그마치 1,340미터에 달하고요, 도로 폭은 약 16미터 정도 됩니다. 이 길은 북쪽으로는 저희가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렸던 판딘풍(Phan Đình Phùng) 거리와의 교차점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쭉 뻗어 내려가 응우옌타이혹(Nguyễn Thái Học) 거리와 만날 때까지 이어지는데요. 1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이 널찍한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호앙반투(Hoàng Văn Thụ), 디엔비엔푸(Điện Biên Phủ), 쩐푸(Trần Phú), 그리고 까오바꽛(Cao Bá Quát)처럼 역사적 숨결이 깊게 배어 있는 여러 굵직한 도로들과 교차합니다.
홍응옥: 이처럼 아름답고 낭만적인 길입니다만, 사실 호앙지에우 길의 역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응우옌(Nguyễn, 阮) 왕조 시절, 오늘날 이 길의 위치는 원래 탕롱 황성, 즉 응우옌 왕조 시대의 하노이성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던 방어용 해자였습니다. 중요한 방어선이었죠. 조정의 집무 및 생활 구역을 성 밖의 일반 민가와 철저히 분리하는 역할을 했으니까요.
뚱응옥: 그런데 말이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배자들이 서구식 도시 모델에 따라 하노이를 재개발하면서 이 길의 모습은 아주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인들은 널찍하고 곧게 뻗은 대로를 만들기 위해 물이 흐르던 해자를 메우고 흙으로 된 방어벽을 평평하게 밀어버렸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죠. 당시 도시 계획 지도에서 이 길은 처음에 단순히 ‘53번 도로(Voie No. 53)’로 표기되었습니다. 그러다 1902년, 프랑스의 위대한 대문호의 이름을 딴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대로’로 이름이 바뀌었고요. 1934년에는 당시 인도차이나 총독의 이름을 빌려 ‘파스키에(Pasquier) 대로’로 다시 바뀌는 수모를 겪었죠. 그리고 마침내 1945년 이후에야, 이 길은 호앙 지에우(Hoàng Diệu)의 이름을 따게 됩니다.
홍응옥: 호앙 지에우 선생은 당시 총독이었는데요, 한국의 조선시대로 치면 아주 넓은 지역을 다스리던 ‘관찰사’나 ‘도지사’ 같은 높은 벼슬이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호앙 낌 띡(Hoàng Kim Tích), 자는 꽝비엔(Quang Viễn), 호는 띤짜이(Tỉnh Trai)입니다. 옛 꽝남성 디엔반(Điện Bàn)현 쑤언다이(Xuân Đài) 마을에서 태어났죠. 학문을 숭상하는 유교 가문 출신으로,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친 수재였습니다. 1880년, 프랑스 식민지배자들이 북부 지방을 두 번째로 삼키려 호시탐탐 노리던 그 위태로운 시기에, 뜨득(Tự Đức, 嗣德) 황제는 그를 하닌(Hà Ninh)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당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를 지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긴 것이죠. 부임하자마자 그는 프랑스군의 야욕을 정확히 간파했습니다. 조정은 망설였고 지원조차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는 성곽을 보수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곧바로 매진했습니다.
뚱응옥: 1882년에 벌어진 하노이 성 방어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입니다. 1882년 4월 25일 아침, 프랑스의 앙리 리비에르(Henri Rivière) 대령은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거절당하자, 돈투이(Đồn Thủy)에 있던 포함에서 하노이 성을 향해 무자비한 포격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호앙 지에우 총독은 직접 성벽 위에 올라 군인과 백성들을 지휘하며 맹렬히 맞서 싸웠고, 적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화력이 너무나도 막강했던 데다 일부 관리들의 뼈아픈 배신까지 겹치면서, 결국 성의 서문이 뚫리고 맙니다. 더 이상 성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병사들의 헛된 죽음을 막기 위해 군대를 해산시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황제께 사죄하는 혈서를 남긴 뒤, 보미에우(Võ Miếu) 정원으로 걸어가 한 사과나무에 목을 매어 기꺼이 자신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베트남 선비들의 충의를 상징하는 영원한 불꽃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목숨 바쳐 지켰던 바로 그 성곽을 포근히 안고 있는 길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위대한 총독에게 바치는 최고의 예우이자 헌사일 것입니다.
홍응옥: 다시 현재의 거리로 돌아와 볼까요? 우리는 지금 호앙지에우(Hoàng Diệu) 길 18번지와 19C번지, 탕롱 황성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에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고궁들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약 13세기에 걸쳐 정치 권력의 중심지로 끊임없이 존재해 온 탕롱 황성이 있습니다.
탕롱 황성은 탕롱, 즉 지금의 하노이 수도의 역사와 깊게 맞닿아 있는 베트남 최고의 역사 유적지인데요. 수많은 봉건 왕조의 권력 중심지였던 이곳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1010년, 리 태조 황제가 호아르(Hoa Lư)에서 다이라(Đại La, 현재의 하노이)로 수도를 옮긴 직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고요, 최초의 궁전들은 단기간에 조성돼 1011년 초에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해요. 유네스코가 인정한 황성의 핵심 유산 구역은 무려 18.395헥타르에 이릅니다.
뚱응옥: 먼저 18번지에 위치한 고고학 유적지로 여러분을 안내할게요. 2002년에 발견되어 약 19,000제곱미터 면적에 걸쳐 발굴된 이곳은, 시대 순으로 뚜렷하게 겹겹이 쌓인 유물과 유적 시스템으로 전문가들을 그야말로 깜짝 놀라게 했죠. 세상에,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7~9세기의 탕롱 이전 시대 문화, 리-쩐(Lý – Trần) 왕조 문화, 그리고 레-응우옌(Lê – Nguyễn) 왕조 문화를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리 왕조 시대 궁전 지붕을 장식했던 용과 봉황 머리 조각상부터, 레 왕조 초기의 속이 비칠 듯 얇고 투명한 도자기 그릇까지 수백만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거든요. 참 신기하게도 후대 왕조들이 수도를 옮기지 않고 이전 왕조의 터 위에 그대로 궁전을 지어 올렸는데요. 이게 바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흙으로 쓴 역사책’을 만들어냈고, 탕롱 황성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응옥: 황성에 오신다면, 자금성으로 이어지는 견고한 돌출입구인 도안몬(Đoan Môn, 단문)에서 인증샷 남기는 걸 잊지 마세요! 견고한 5개의 아치형 문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옛 황실의 가장 중요한 의식들이 열리던 장소랍니다. 그 다음으로 만날 곳은, 정교하게 휘감긴 돌용 쌍이 있는 디엔낀티엔(Điện Kính Thiên, 경천전)인데요. 레 왕조 초기의 눈부신 황금기를 보여주는 흔적이죠. 관람 구역 안에는 경천전 뒤편에 자리 잡은 작은 누각, 허우러우(Hậu Lâu, 후루)도 있습니다. 옛 후궁과 궁녀들이 머물던 곳으로, 동양과 서양의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뚱응옥: 그런데 말이죠, 호앙지에우 길에는 황성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하노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특별한 명소들이 모여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30번지에는 싱그러운 가로수와 고풍스러운 노란 벽 뒤에 조용히 숨어 있는 오래된 프랑스식 빌라가 있습니다. 바로 고(故) 보 응우옌 잡(Võ Nguyên Giáp) 대장님이 60년 넘게 머무셨던 자택입니다. 이 집은 약 200제곱미터 규모로, 정원과 연못, 그리고 아름다운 난초 덩굴이 어우러진 섬세한 인도차이나 건축 양식을 띠고 있어요.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베트남 인민군의 ‘큰형님’이셨던 대장님의 소박하고 겸손하지만 위대한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뜻깊은 ‘붉은 주소’, 즉 역사적 명소랍니다.
홍응옥: 호앙지에우 길의 짝수 번지 쪽을 따라 걷다 보면,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지어진 오래된 빌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음양 기와지붕, 빛을 조절해 주는 나무 루버창, 그리고 코린트식 기둥 장식 같은 특징을 가진 이 빌라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견고함은 물론이고, 열대 기후와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건축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죠.
뚱응옥: 한국에 고즈넉하고 서정적인 전통미로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경복궁 주변의 돌담길이 있다면, 하노이에서는 바로 이 호앙지에우 길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호앙지에우 길은 건축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 덕분에 하노이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거리로 자주 꼽히는데요. 이 길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건, 보도를 따라 세 줄로 길게 늘어선 오래된 싸끄(Xà cừ, Khaya senegalensis) 나무들입니다. 사계절 내내 거리를 포근하게 덮어주는 거대한 초록빛 돔을 만들어주거든요.
홍응옥: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 거칠거칠한 이 커다란 싸끄 나무 기둥들은, 시원한 그늘을 내어줄 뿐만 아니라 공기를 맑게 해 줍니다. 덕분에 호앙지에우 길은 도시의 시끄러운 일상과는 뚝 떨어진 듯, 언제나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죠. 특히 봄이 찾아오는 2월과 3월이면, 거리는 보랏빛과 하얀빛의 눈부신 반(Ban, 바우히니아) 꽃으로 화사하게 물듭니다. 꽃이 만발하는 시기에는 수천 명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이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에 담기 위해 찾아온답니다.
뚱응옥: 네, 이렇게 해서 오늘은 하노이 호앙지에우 길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이제 〈베트남 거리거리 알아보기〉 코너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는데요. 끝까지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베트남을 하나씩 알아가는 여정 속에서, 혹시 이름이 궁금한 지명이나 거리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저희 VOV5 한국어 프로그램 웹사이트나 팬페이지 댓글, 또는 이메일 vov5.korea@gmail.com으로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홍응옥: 네, 청취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거리 추천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동네도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곳이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